2018년 5월 30일 수요일

변희재 2

변희재는 어쩌다가 구속까지 당했을까?
증거인멸과 피해자 위해 가능성 운운하지만 그가 조폭도 아니고 매일 유튜브 방송으로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을 늘어놨었기에 구속사유가 잘 이해가지 않는다.
조폭처럼 야구방망이나 칼 등으로 상대방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니고 손사장에게 자신과 같이 토론해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사람이 증거를 인멸할 리도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1. 일단 잡아넣은 후 새로운 범죄를 발굴해서 추가기소를 한다.
2. 피해자(라 주장하는) JTBc 관계자들에게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하거나 숨을 기회를 준다.
3.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할 방송을 원천차단한다.  가뜩이나 각 대사관을 돌아다니며 정부의지에 반하는 그의 존재가 은근히 성가셨기 때문이다...

대략 위 세 가지 이유가 실질적인 구속사유가 아닐까 한다.

월요일 마지막 방송에서 자신이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줬다며 정미홍 등에게 사과하고 손석희 사장 집앞에서의 시위는 이미 일년도 더 된 일이라고 항변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아마 저런 경우를 판사가 구속사유로 보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검사 세 명이 달라붙으면 없는 죄도 만들어낸다는 전직 재소자의 말이 전혀 틀림없음을 알아차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작금의 상황에서, 일단 한번 구속되면 나오기가 힘들 것이다...  벼르고 별러 구속시켰으니 세상의 온갖 더러움 다 맛보게 하고 싶겠지.
더구나 재소자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여름 아니던가 !
병실과 감방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은 진정 훌륭한 인격을 지닌 자일 것이다.  변희재씨가 그 예외적인 경우에 속하기를 바래본다.

아무리 미디어워치가 주류언론이 아니라 해도 kbs mbc 그 어느 방송사도 변희재의 구속에 한의하는 논조를 찾기 어렵다.  극우논객이 잡혔다며  고소해하는 분위기이다.  역시 같은 독립언론 몇몇만이 그의 안위를 걱정한다.

한국 언론인들은 대세에 순응하는 분위기가 일반인들보다 훨씬 강하다. 

2018년 5월 29일 화요일




하루하루는 온갖 지저분한 일들로 넘쳐나지만 오월은 일년 중 가장 꽃 특히 장미가 아름다운 시절이다.

2018년 5월 28일 월요일

끝나지 않은 복수

아마 국정농단과 국정원 털기에 이은 적폐청산3탄으로 법원이 낙점되었나 보다. 
같은 사안을 세 번이나 조사하면 처음엔 죄가 없던 사안도 죄처럼 보일 터이다. 
대법원장은 아마 의도치 않게 훗날 경영학과에서 필수과목으로 배우는 조직관리론에 '늦은 결정으로 조직 내 신뢰를 무너뜨린 케이스'로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3심제를 기본으로 생각하기에 조사도 최소 세번이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만약 다른 회사에서 같은 소재의 조사를 세번 한다면 그 반발이 실로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저런 조직은 또 다를 수도 있다.
좀처럼 검색에 오를 일이 없을 전직 대법원장이 거의 하루동안 실검1위에 오른 걸 보니 올 하반기 적폐사냥은 굳이 다른 소재거리를 찾지 않아도 될 듯.

법원 블랙리스트 관련자들도 감옥에 갈까.  검찰은 드디어 다 보낼 수 있겠다고 흥분하고 언론도 특집기사로 보조는 맞출 것이다. 
분명한 건 설령 감옥에 보내진 못하더라도 앞으로 시작될 드루킹 특검은 충분히 망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전 정권 온갖 일에는 득달같이 나서는 게 본인들도 부끄럽지 않을까.

아마 자신들의 모든 행동을 선으로 착각하고 뒤에서 하는 소리는 패배자의 잔소리 쯤으로 생각하기에
부끄러움 따윈 전혀 느끼지 않고 지난 날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추락하는 걸 짜릿한 쾌감을 갖고 바라볼 것이다.

2018년 5월 27일 일요일

당신의 밤과 음악 2

바로 어제가 당신의 밤과 음악의 마지막.  그러니까 이미선씨가 진행하는 마지막 방송이었다.  기분이 이상하고 묘했다.  좋아하는 방송이어서 그랬나 보다.  아나운서답게 이미선씨는 마지막까지 온화하고 친절한 말투로 방송을 마쳤다.  자신이 운이 좋은 진행자라고도 했고 많은 고별인사에 일일히 답하지 못한 걸 미안해하기도 했다.  몇 달 방송하고 마지막에 울음을 참지 못하는 연예인 진행자들과 달리 차분하고 완벽한 끝맺음이었다.

몇년 전 그녀는 정년퇴직을 하며 이 방송에 고별인사를 한 적 있었다.  그러다가 일년 반쯤 지났을까.  직원이 아닌 진행자로 다시 방송에 복귀했고 이젠 영원한 작별을 했다.  그녀의 품위있는 말투가 매력적이었기에 아마 다른 진행자가 방송해도 아쉬움을 떨치기 힘들 것이다.  

주말에 몰아 듣곤 했던 변희재의 유투브 방송도 그의 구속영장 청구소식과 맞물려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뻔죽거리는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높은 예측력을 발휘한 방송이기에 아쉽기 그지없다.  명예훼손으로 영장청구를 한다는 사실 자체도 우습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인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  과연 그는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6월에는 좀 더 하던 일에 집중하란 신의 계시인가.  
아쉬움은 크지만 어쩔 수 없다. 

2018년 5월 23일 수요일

슬프지만 진실 - 자살시도자의 경우

매일같이 한국에선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제 자살에 성공하는 확률은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 자살에 실패하는 경우는 어떤 삶을 살아갈까...
내가 왜 그랬을까 싶어서 후회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간다라...  그런 경우는 아주 좋게 풀린 경우이고 영화 속이나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당수는 향후 스스로 자살시도가 어려울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고 평생 침대 위에서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목을 맨 사람은 죽진 않아도 목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뇌병변장애과 시각장애를 얻어 스스로 평생 침대에서 꼼짝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고
열차에 뛰어들었으나 목숨은 건진 경우는 다리와 팔을 절단한 채 보호시설에서 입으로 모든 걸 하는 방법을 새로 배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강에 뛰어들었으나 목숨만은 건진 경우는 호흡기에 의지한 채 식물인간으로 나머지 생을 살아가는 경우도 많고
옥상이나 빌딩에서 떨어졌으나 산 경우, 팔 다리가 마비되어 활동보조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살고 죽는 것 중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낫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또한 모든 인간에겐 생에 대한 열망과 본능이 있어 자살 시도 중에도 중지하고 생을 갈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의료진과 공무원들 복지시설 종사자들 포함한 일반인들 모두는 죽음을 시도하는 사람을 말려야 할 의무가 있고 죽어가는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다가 그 시도가 실패한 경우
나머지 생은 혼자 손하나도 까딱하지 못할 상태로 중증장애 상태로 길고 긴 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자살이야말로 섣불리 시도해선 안 될 사안인 게,
실패의 경우 그 리스크가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사건이란 데 있다.   최소한 언어장애를 입고 중증 장애를 입을 경우가 아주아주 많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심사숙고해서
자살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 젊은 시절 자살 시도로 중증장애를 입어 5년이 지난 지금, 나머지 가족들은 병원비로 인한 파산상태에서  조현증과 우울증을 앓고 본인은 본인의 상태도 모른 채 가끔 눈물만 보인 채 누워서 살아가는 사람을 봐서 그런지, 사람들이 자살시도의 위험성을 보다 현실적으로 인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한국 청소년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건 다음 세 가지 - 자살시도하지 않기.  그리고 임신하지(시키지) 않기, 학교폭력하지(당하지) 말기 - 이것들만 피해가도 인생이 아주 꼬이진 않을 것이다.  공부건 뭐건 다 나중 일이다.

2018년 5월 22일 화요일

헛간을 태우다 對 버닝

요즘 인기라는 영화 버닝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 를 원작으로 했다기에 주말에 읽어보았다.  
괜찮은 소설이긴 한데 너무 짧고 특별한 사건이랄 게 없다.  31세 소설가, 비슷한 나이 또래 오렌지족(이렇게밖에 표현하기 어렵다), 21세 젊은 여자 이렇게 셋이 노닥이다가 오렌지족 남자가 자신의 취미를 정기적으로 헛간을 태우는 거라고 고백하고 여자는 사라진다는 내용이 전부.  헛간을 태운 게 발각되어 경찰이 추격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끼리 치정에 얽혀 싸우는 것도 아니다.  
하루키 소설의 대부분이 이렇듯 별 특별한 내용보단 분위기로 밀고나간다지만 평면적이고 답답한 느낌을 영화에선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했다.
책 뒷면 작가 소개란을 보며 하루키와 이문열의 나이가 같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한쪽은 젊음의 작가 한쪽은 꼴통의 이미지.하루키의 젊음도 깊이 읽어보면 별로 다가가고 싶지 않은 젊음이다.  주변엔 죽음이 가까이 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경증의 정신질환후보생들도 많다.  다만 그의 초기 소설 속  퇴근 후 생선을 구워 맥주와 곁들여 마시는 상쾌한 생활.  원하는 상대와 척척 사귀고 경제적 빈곤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쿨한 젊음의 이미지는 그간 내가 익숙했던 빈곤한 청춘과 대척되는 지점에 서 있기에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이 부러울 수 밖에 없다.   그 쿨한 이미지가  비루한 젊음의 실체를 감추고 있다.  
반대로 이문열의 꼴통 이미지도 다소 과장되어 있을 것이다.   실제 이문열을 만나본 사람들은 젠틀하고 따뜻한 작가란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대와의 불화로 정작 좋은 시절은 다 날려버린 불운의 작가.  동년배 하루키를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렇게 주말에는 원작소설을 읽었고 오늘 휴일엔 영화를 봤다.  얼마나 영화와 비슷한지 떠올리며.  주인공 종수는 20대 청년으로 여주인공 혜미와 같은 나이다.  이게 설정의 가장 큰 차이점.  오렌지족 남자(반포맨션에 사는 벤)는 소설 속 설정 그대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나오나 헛간이 아닌 한국 설정에 맞게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으로 변형되었다.
영화 속 혜미의 집은 꼭 나의 집을 그대로 찍었나 싶을 정도로 비슷했다.  사는 지역도, 지저분한 집구석도 단지 보일이같은 고양이가 없고 환영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정도?  아 이것만 해도 큰 차이지.
아무튼, 영화 속 종수가 30대 중산층 소설가에서 복잡한 가정사를 지닌 20대 일용직 노무자이자 소설가지망생으로 바뀌는 통에 이 영화는 유산자(벤)와 무산자(종수)의 대결처럼 그려진다.  부유한 삶을 꿈꾸는 혜미는 상품홍보모델일을 하며 판토마임을 배운다 아프리카로 여행을 간다 이것저것 하지만 끝내는 벤의  의해 최후를 맞았음을 넌지시 암시한다.  혜미와 종수를 잇는 끈은 파주 안에서도 어릴 적 혜미가 빠졌다는 우물로도 드러난다.  혜미의 가족들은 우물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릴 적손에 집을 나간 엄마는 우물을 기억한다.  우물이 불행한 사람들을 엮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인가...
영화의 소소한 재미 중 하나는 현 mbc사장인 최승호씨가 종수의 아버지로 나와 대사 한 마디 없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자존심은 강하지만 능력없는 영화 속 모습이 지금 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후반부는 소설에서 다루지 않은 헛간(비닐하우스)을 태운 후 상황이다.  헛간이 사라지는 걸 매일 체크하던 소설 속 남자처럼 종수 또한 집주변 비닐하우스를 매일 확인한다.  사라진 헛간이 없는 걸 기억해 내며 의문을 표하는 소설 속 남자처럼 종수는 벤에게 자신이 확인할 땐 태워진 비닐하우스가 없다며 따져물었다.
하지만 그대로 범인과 헤어지고 다시 12월을 맞는 소설 속 남자와는 달리 종수는 자신의 트럭으로 벤을 쫓고 그에게 책임을 묻는다.
난 이 부분이 약간은 억지로 보였다.  사실 어떤 스토리를 종결하는 가장 쉬운 해결책은 종종 살인같은 강력범죄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영화 역시 간단한 해결책으로 도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짧은 소설을 영화화할 때 이 정도의 극적 효과 없이 극을 마무리짓긴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다소 평범하긴 하나 그 짧은 소설 안에서도 하루키는 자신의 할 바를 다 했다.  주인공들이 모두 정지한 상태에서도 그 흔한 살인사건없이도 소설은 영화보다 더 위대하다는걸 보여준다.  그만큼 매력적이다.

헛간을 태우다 대 버닝의 승자로는,  헛간을 태우다의 손을 들어주겠다.   역시 아직까지는 텍스트가 영상을 이긴다.  Text kills Video.

2018년 5월 21일 월요일

공직자와 언론

인터넷에서 많이 까이는 공직자들은 과연 그 죄가 무거워서일까 언론에 찍힌 탓일까.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섞여있는 경우가 많겠지만 요즘엔 후자 탓이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물론 어느 정도 지위가 되는 공직자의 경우이다.

예컨대, 진경준 씨의 경우,
결국 징역 4년으로 끝맺었지만 뇌물죄가 적용안된 판결 내용을 두고 한겨레 신문에서 강하게 더욱 강하게 처벌할 것을 주장하는데, 사실 딴 신문은 어떨지 몰라도 한겨레 신문이 이런 사안에 거품무는 건 상당히 이중적이다.  왜냐면 이미 작년에 자사 기자간 살인사건으로 역시 같은 자사 기자가 징역 4년을 받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살인죄에 4년이라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솜방망이 처벌이지만 이 기자는 많다고 항소했다고 한다.  설마 살인죄는 뇌물죄에 비해 가볍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 신문사의 기본적인 아니면 말고 식 태도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항상 공직자에 대한 중한 처벌을 모토처럼 주장하는 한겨레를 포함한 언론들은 그가 평생 감옥에서 썩지 않게 된 사실에 못내 아쉬워한다. 그러나 설령 4년을 다 마치지 못하고 가석방된다쳐도 법조인으로서 그의 인생은 끝난 것.  고생길이 훤히 열렸다고 봐야 한다.
이쯤에서 법원이 봐주기 판결을 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은 계속 나오지만 반대의 경우-좀 심하게 엮인 것 아닌가-하는 의견은 제시하는 것조차 꺼려지게 만든다. 
과연 그럴까.
sharpsharpnews 라고 법조계  뒷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인터넷뉴스 사이트에 가면 그의 첫 재판부터 자세하게 볼 수 있는데, 여기 기자 말로는 뇌물죄 무죄는 어느 정도 예측가능했다고 한다.  
 결국 넥슨 주식으로 잡지 못하고 종합감사처럼 뒤져낸 처남 회사에 납품 강요죄 등으로 징역4년을 받다니.  그 역시 작전세력에 당했던 것 아닐까.   이미 재수없다고 검찰 내에서 뒷소문이 자자했다는 한겨레의 뒷담화식 기사에서 기자의 묘한 쾌감이 느껴진 걸 보면.
같은 종류의 실수를 해도 누군가는 청렴하고 칼같다는 칭송을 계속 받는 반면 누군가는 작전세력에 의해  제거된다. 어떤 지검장은 부인이 20억 주식거래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마자"흔들기"라는 보도가 나오며 곧바로 기사목록에서 사라졌고 어떤 국회의장은 포스코와 부당거래가 있었다는 녹취록까지 나왔다가 그 역시 증거부족이라 느껴서인지 신문사들의 뒤이은 취재가 없다.  어째 증거부족이나 흔들기는 꼭 여당쪽에서 나타나는지 그것 또한 의문이다.    국민은 개돼지라는 불멸어를 남기고 장렬하게 전사(했다가 퇴직금은 가까스로 지킬 수 있게 된)한 교육부 고위공직자 역시 기자의 억하심정 때문에 일이 커진 케이스이다.  
기자들이 지키려고 하는 공직자의 경우 안 좋은 기사가 나왔다가도 하루 이틀만에 사라진다. 자신들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공직자들은 비리가 있어도 계속 품고 가고 이해관계와 맞지 않는 공직자들은 기어코 교도소로 보내는 게 한국기자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