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9일 화요일

길






- 높은 곳에 올라가니 보이는 건 십자가가 압도적으로 많다... 우리나라, 특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교회가 많긴 많다.
- 독일문화원은 문을 닫았다. 정확히 말하지면 서울역 서울스퀘어 부근으로 이전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왠지 아쉬워졌다. 작년 이맘때 잠시 여길 끙끙대며 올라와 다녔었는데...
- 어느덧 붉은 낙엽이 어색하지 않은 계절이 왔다. 일년의 사분의 삼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구나. 올해도 역시나.
- 후암동에서 소월길 올라가는 계단. 군데 군데 계단이 있어 오르는 방법은 여러가지.
- 후암동 일대는 옛날 슬레이트 집들이 꽤 많아 예전 봉천 3동 살 때의 추억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쓰레기 분리수거가 아주 안 되는 지역이기도 하다...항상 느끼는 거지만...단속을 해도 아마 잘 이루어지지 못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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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근을 나가 후암동에서 소월길까지 돌아다녔다.

소월길은 내가 좋아하는 길이기는 하나... 경사가 심해 후암동에서 소월길에 이르는 가파른 길은 꽤나 운동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오랜만에 여길 걸어보니 기분이 좋았다.

뉴욕 느낌





- 타임스퀘어 부분의 정신없음.. 명동 거리와 비슷하긴 한데 도로가 좀 더 넓고 사람들이 좀 더 가지각색이라는 점만 틀리다. 뮤지컬은 아마 본다면 싸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할인해주겠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 무역센터가 무너진 자리에는 새로운 프리덤 타워가 속속 올라가고 있었다. 짓는 모양새가 신도림역 디큐브 시티를 짓는 형태와 비슷해서 두 건물이 계속 비교됬다. 이 큰 건물을 짓는 게 엄청난 고용을 창출하겠지. 아마도.

- 기본적으로 "항구"도시라서 그런지 관광용 선박들이 즐비했다. 항구에는 사람들도 많았고.

- 뉴욕 월스트리트 노점상의 트랜드는 할랄 버거다. 이게 그리 맛있는지 아주 많은 가게들이 있었다.



보통 뉴욕만도 일주일여를 여행하는데 고작 삼일!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틀 반을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나이아가라도 못 보고 자유의 여신상에도 올라갈 수 없었다.

숙소에 있던 중국 여학생 양양(앙양인지 양양인지 헷갈린다)은 워싱턴 디씨를 보고 뉴욕에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가 볼 것이라 얘기했는데, 난 이거 여행 일정이구 뭐고 없어 참 빈약하구나 싶었다.

하지만 지하철 일일 언리미티드 패스를 끊어 하루종일 맨하튼에서 브루쿨린으로 퀸스로 할렘으로 돌아다녔다.

어쩌면 폭포에 가면 뭘 할 것이며 자유의 여신상은 또 안 올라가면 어떻단 말이더냐...

단, 기억에 남는 건 경치가 아니라 -
마지막 날엔 공항가는 전철이 하필이면 그날 운행을 하지 않아 대체수단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바빳고 (결국 다음 비행기를 타야 했다), 오전 지하철 하릴없이 멀뚱멀뚱 천장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비집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부르짓는 얼굴을 여기서도 볼 수 있었다는 것, 저녁 지하철 지친 듯 앉아있는 다국적 시민들의 표정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공원과 낡긴 했어도 이용하기 편한 도서관이 그래도 이런 것이 뉴욕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자극하는 유인책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내가 학생이었다면 아마도 느끼는 것이 또 틀리겠지만...
어느덧 십이년차 직장인이다 보니 고단한 생활인들의 모습이 좀 더 눈에 많이 들어왔던 것 같다.

2010년 10월 14일 목요일

보스턴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짧은 시간동안 여행했던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뉴욕 이 세 도시는 그나마 미국에서 잘 살고 치안이 안정된 곳이었기에 이 세 도시만 보고 미국이 어떻다고 말하긴 힘든 것 같다.

단지 아침 버스를 타러 기다리던 중 졸린 눈꺼풀을 비비며 앉아있는 노동자들과 이른 새벽 골목을 청소하는 라틴계 청소부들을 보면(어찌 된 것이 건설일용직과 청소업무는 대부분 히스패닉들이 하는 듯 하다) 어디에건 먹고 사는 건 힘들구나... 이 정도를 느꼇던 것 같다.

그래도 정도를 따지자면 보스턴은 그래도 대도시에서 영어가 가장 잘 통하고(?) 대학가라서 젊은 사람들도 많고... 여러 모로 쾌적한 도시였던 걸로 기억한다.

작은 한강처럼 보이는 찰스 강이라는 곳을 다리가 이어주고 있는데 이 다리를 기점으로 한쪽은 도심지, 한쪽은 엠아이티나 하버드같은 대학들이 몰려있다.

그리고 낮이나 밤이나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다리를 뛰어다니고 있다.

어학연수든 교환학생이든... 이곳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한국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는데 잠시라도 이런 곳에서 생활할 수 있는 사람들은 운이 좋구나 싶었다.

구릉지대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내 앞자리 과장님은 뉴스에서 보니 곧 샌프란시스코에 지진이 날 거라며 여행갔을 때 지진이 나면 어떻게 피하느냐며 걱정을 해 주었다.

다행히 지진 따윈 없고 첫날만 좀 후줄근한 날씨였지만 연이은 이틀은 더 이상 쾌청하기 힘들 정도로 맑은 날씨였다.

1930년대인가 큰 지진이 났었고 80년대에도 지진이 났었다지만...
우리나라 산동네 저리 가랄 정도로 산을 깍아 만든 단독주택들이 즐비한 이 도시가 과연 지진이 나면 어떻게 대피를 하며 피할 공간은 제대로 만들어 놨는지 심히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저 높은 지대와 아기자기한 집들이 조화를 이루어 도시 전체에 생동감을 주고 있었다.
곳곳에 공원도 많고...
치안도 딱히 안 좋은 것 같진 않고.

돈만 많다면(?) 샌프란시스코는 참 살기 좋은 도시 같다.

성적 소수자들의 천국





벌써 여행을 다녀온지 이십여일째가 되어가는구나.
지금 기록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처음 기착지인 샌프란시스코부터 기억을 더듬어 내려가면...



문제의 나의 숙소는 차이나 타운 근처에 있었다.
그래서 새벽에 찾은 숙소인데도 바깥은 술먹은 사람, 싸우는 사람, 경찰차량이 몰려 난리도 아니었다.

여기에서 약간의 문제는 있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별거 아니었으며...정리하자면 내가 걍 이십 달러 손해 본 것. 근데 오히려 그것에 약간 연연했던 것도 하다.

첫날부터 새벽에 돌아다니면서 느낀 건 이곳이 그리 큰 도시는 아니라는 것. 경사가 아주 심한 곳이라는 것, 그리고 굳이 차이나 타운 아닌 곳에 가더라도 넘치는 중국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이란 것... 중국인들은 굳이 영어를 배울 필요도 못 느낄 것 같다.

히스패닉도 많긴 많다. 하지만 히스패닉들은 후에 가게 된 뉴욕 보스턴 ... 어디에나 다수였던 반면 샌프란시스코에는 히스패닉과 중국인이 서로 막상막하였던 것 같다.


새벽의 흐릿한 샌프란시스코를 걷게 된 후 오전 오후... 지나면서 느낀 또 하나, 아 여긴 정말 게이들의 천국이구나. 하는 것.

카스트로거리라는 길게 뻗은 비탈길은 게이들의 아지트와도 같다.

세계 곳곳의 게이들이 인종과 나이를 초월하여 서로에게 빠져드느라 정신없었다.

각자의 나라에서 외로웠고 멸시받았던 성적 소수자들은 적어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자신들이 마음 편하게 애정을 과시할 수 있어 행복할 것이다.

2010년 10월 8일 금요일

렉싱턴 애비뉴



비포 썬라이즈를 보고 유럽여행목록에서 비엔나를 추가시켰다는 사람들이 많듯
렉싱턴 이란 거리명을 보곤 렉싱턴의 유령이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 제목을 떠올린 건 우연이 아니다.

뉴욕 렉싱턴 애비뉴는 아주 평범한 거리라서 유령 따윈 나오지 않을 법한 거리이다.

왜 제목을 유령으로 지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

중간중간 큰 건물이 나오고 관광객들이 많이 몰린 거리가 있긴 하지만 특이할 정도는 아니다.




2010년 10월 2일 토요일

샌프란시스코 맑은 하늘.


샌프란시스코 일정의 마지막 날이었던 9월 20일. 맑고 화창한 날이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