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30일 수요일

나의 안식처

언제부턴가 도서관은 나의 아지트가 되어버렸다.

밤 열시까지 종합자료실을 개방하면서

나처럼 오래 앉아있긴 힘들어 하나

서재 앞뒤 돌아다니며 책구경하는 건 엄청 좋아하는 주민에게

도서관은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공공재이다...



씨네21이나 보그, 에스콰이어 같은 읽긴 좋아하지만 사긴 부담스러운 잡지들도 꼬박꼬박 챙겨볼 수 있고

특히 화집을 마음껏 볼 수 있어 좋다.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외로운 타국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공감하기도 하고

막스 에른스트의 거칠고 용기있는 회화에 감탄하기도 한다.

끝없는 오후가 펼쳐진 미래파 화가들의 작품에 환희를 느끼고

폴록의 끓어오르는 터치를 잠깐이나마 느껴본다.



뒤러 판화집이나 프란시스 베이컨의 소름끼치는 그림에 이마를 대고 기분좋은 잠에 빠지기도 하며

그렇게 십분 이십분 짤막한 잠을 자다가

이루지 못한 익숙한 꿈 공간이 펼쳐져

멀쩡한 등과 사교성있는 말씨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가 되기도 한다.


이따금 넋놓고 있다가 열시가 되어 도서관 직원이 깨우는 불상사도 생긴다.




같은 지역에서 오래 살다 보니

도서관에 자주 오는 사람들을 대충 알게 되었다.

물론 서로 인사는 안하지만...



"저 사람은 여태 공무원 공부하나... 안타깝네"

"저 남자 헤어스타일이 바뀌었네"

"저 여학생은 요즘 많이 수척해졌군..."



이런 생각을 혼자 수도 없이 하면서

퇴근 후 겨우 한두시간을 보낼 숨쉴 공간이 있다는 데 안도한다.



일요일

오늘처럼 흔치 않은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

잠시 사람을 만나 대화다운 대화를 하지 못한 날엔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책장 부드러운 질감을 탐한다.

이런 공간이라도 없었다면 - 그동안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도서관에 많은 걸 빚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