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1일 일요일

오후 두 시

오후 두 시에서 네시까지는 평일이나 휴일 모두 힘든 시간이다.
회사에선 졸린데 전화는 엄청 집중되는 시간이구 그 집중의 내용은 구체적이고도 신랄한 항의일 때가 많다. 그래서 고객만족이란 무시무시한 의무를 못해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간이기도 하다.

요즘처럼 체크시스템이 잘 되어있을 땐 잠시라도 소홀하게 받은 전화가 언제든 목줄을 죌 수 있기에 더욱 힘들다.

휴일의 오후 두 시는... 더 이상 잠도 오지 않지만 약간은 우울하고 약간은 피로해서 책상 앞에서, 지하철 안에서 졸다가 먹다가... 이도 저도 되지 않게 하루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이런 극심한 피로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척추질환, 내분비질환, 골다공증... 이런 만성질환에서 오는 게 일차적이겠지... 그러나 "권태"라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도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아프면서도 권태롭고
피로하면서도 권태롭고
열망하면서도 권태롭다.

권태를 어떻게 이길지가 나의 오후시간을 좌우할 것이다.

배수아

구십 오년에 작은언니가 뜬금없이 사다놓은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라는 단편집으로 이 작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하이네켄 맥주를 즐겨 마시고 소비지향적인 어느 이십대 대학생 내지 직장인을 떠올리는 내용...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류같은 느낌이 약간은 드는 그런 소설가... 하지만 재밌다는 인상이 들었고... 그 이후로 대략 십칠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사실 글을 쓰고 싶어했었기에 병무청 공무원이면서 소설가도 한다는 그녀의 초인적이면서도 심드렁한 사적인 면에 더 관심이 갔었던 것 같다.

오늘 도서관에서 라디오를 듣다 평화방송 북콘서트에 배수아가 낭송자로 나오는 걸 들었다.
요즘 나오는 그녀의 책은 너무 어려워서- 같이 나온 이상은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뭔지 모르겠지만 느낌은 좋고 읽었던 대목을 계속 또 읽고 있는" 그런 느낌 - 잘 읽지 못했는데 오늘 그녀가 마치 연극배우처럼 낭독하는 글을 읽으니 참으로 많은 발전을 하고 변화를 가져온 지난 세월을 보내왔구나 싶어 이제는 공무원도 더 이상 아니지만 작가로 굳건하게 선 그녀가 더더욱 부럽기도 하고 아 예술가는 역시 타고나는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요즘 난 진정 뭐가 되고 싶었었던 걸까... 이런 생각이 들곤 하다. 오늘 방송을 들었던 건 정말 되고 싶었던 건 예술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흉내를 내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버거운 일상을 끄집어내다 보면 내게도 그녀처럼 빛나는 열정과 용기가 있었으면 좀 다르게 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지난 일을 어찌 탓하랴. 할 수 있는 데에서 구하는 게 가장 최선일 듯.

어쩄든 배수아 책은 여전히 어렵고 난 여전히 그녀의 초기작 여섯 번째 여자 아이의 슬픔이 더 공감가지만, 앞으로 더 대단한 작가가 될 것임엔 틀림없다.

2010년 7월 7일 수요일

어떤 죽음

연예인들의 자살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지만, 정말 충격적인 경우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인 것 같다.

20~30대 사망원인 중 자살이 1,2위를 다툰다고 한다. 하기야 내 주변에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여럿 있으니... 할 말 없다.

종교인이라면 비난받을 일이겠으나, 자신이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는 건 자신에 대한 범죄이긴 하다만 타인을 고의적으로 해친 건 아니기에 위법성이 조각되어 범죄라곤 말할 수 없다.

그 러 나...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주변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다준다.
누군가에게 복수하는 게 자살의 목적이라면 대개 그 목적을 달성한다고 볼 수 있다.

며칠 전 또 한명의 연예인이 사망한 이후 충격적이었던 몇몇 죽음의 현장이 스쳐지나갔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사촌오빠의 목맴.
하지만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하긴 못했기에 - 아버지는 직접 목격했다 - 내가 받은 충격은 그저 평소의 슬픔보다 몇 배 이상의 안타깝고 슬픈 감정이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정작 장례식에서 기억나는 장면은 화장장을 구하지 못해 성남 화장장, 서울승화원, 부평화장장...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보다가 성남에 간신히 자리가 낫다 하여 부리나케 자리를 선점하러 갔던 급박한 순간이다.

그러다가 슬픔이 느껴졌던 순간은 윤 아무개 ... 라는 오빠의 이름이 망자란에 적혀있고 바깥에서 화장과정을 알려주는 타이머가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아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있던 한 젊은이가 숨졌구나... 라는 게 느껴져 가족친지들 모두 엄청 울었었다.

또 하나 목격하진 못했지만... 지방 지점에 근무하는 직원이 사망한 사건... 회사 사무실 천장에 목을 매달았기에 그걸 처음으로 발견한 직원의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한다. 결국. 오랜 시간동안 정신과 상담을 받고 좋아졌다는 후일담이 있으니... 아마 이 직원은 엉뚱한 직원에게 자신의 원한을 푼 셈이다.

어찌 보면 죽음은 주변 여러 사람들에게 하는 가장 확실한 복수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완전한 영혼으로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구천에만 떠돌게 될 것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친다는 것만으로 우리 모두는 칭찬받을 이유가 있다.

해방촌

새로 살게 될 공간은 넓게 보면 "해방촌"에 속하는 구역인데, 예전에는 정말 치안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딱히 아주 나쁘지는 않은 듯 하다.

외근업무차 용산구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녀본 바로는 보광동 도깨비시장부터 이슬람사원 주변, 후미진 이태원 골목보단 더 나을 듯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부모님 - 특히 엄마 - 께서 하두 걱정을 많이 해서 외근중, 퇴근후 주거지를 한번씩 돌아보았다.

쾌적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반지하나 옥탑은 아닌 2층이고 아주 외진 곳은 아니기에 그럭저럭 잘 단속하고 살면 괜찮을 듯 싶지만...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엄마의 걱정까지 내가 완벽하게 책임질 수는 없을 듯 하다.
그 걱정은 백퍼센트 내 몫이 아니기에... 꼭 쥔 십자가만이 엄마의 걱정을 덜어줄 듯 하다.

도서관도 가깝고 회사도 가깝고 마트도 산책삼아 갈 정도이고 산은 지척이고... 그러나 결정적으로 집이 낡았네. 하지만 오늘 내일 부서질 집은 아니니까...
그저 나가 살아서 잘 된다는 말을 들으려면 회사에서나 개인적으로 준비하는 일에서나 가시적인 성과를 얻는 게 최고 아니던가...

아빠는 말하지 않은 게 기분 나쁘다고 아예 말을 하지 않는다.
이해는 한다. 연세든 어르신들이 걱정할 만한 사안이다. 재미난 건싫은 소리 하면서도 걱정해 주는 엄마와 자신의 생각이 아니면 말도 섞지 않으려는 아버지와 대비된다. 이것이 여자와 남자의 차이인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차이던가...

언니들은 화를 내고 알아서 이사를 잘 하라고 한다. 이사 후 가장 먼저 할 일은 - 확정일자 받기 및 전입신고, 그리고 가격대비 가장 사은품이 많은 초고속인터넷가입업체를 알아봐서 인터넷연결. 살 건 세탁기와 노트북컴퓨터, 침대...

냉장고는 전주인이 놓고 간다고 했고 - 순전히 이사하기 정신사납다는 이유 때문이다- 가스렌지도 놓고 간다니

새로 버티칼을 설치하고 검은색 로마노 커튼을 달고 최대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살아가는 거다.

치안유지를 위하여...

뭐 이런 생각만 계속될 뿐이니 동네 이름은 해방촌이건만, 내 마음이 해방되기까지는 길고 긴 여정이 될지어다.

2010년 7월 5일 월요일

미완의 계약서

많은 갈등과 고민 끝에 그러나,
그런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짧은 시간 내 결정하여
팔월의 일요일들 중 맨 첫번째 날. 잔금을 치르고 이사를 하는 걸루 결정했다.
잔금치르는 날 위임장이니 임대인 주민등록증 사본 도장 다 받아야 하니 정신이없을 건 자명하다...
그 정신없음 중에 하나라도 깨뜨려지지 않았으면.

난 이렇게 법적 계약의 유효성을 고민하는 동안
엄마와 언니는 그 집이 도대체 안전구역 내 있는지 관심을 가졌다.
엄마는 구체적으로 보일러가 제대로 작동되는지(물론 여름이라 잘 알 수는 없지만) 비가 새는 집인지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다며 한번 불시에 다시 집에 가보랜다. 그래서 추적추적 비내리는 저녁 홀로 다시 가 보니 세입자가 있었다. 이 아저씨와 몇마디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점은 -
어제 좀 더 곰곰히 생각할 걸...이런 일말의 후회는 있었지만...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학교에 가고 직장을 잡은 건 꼭 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랬다고 말할 수 있지만 -
서울에 엄마 아빠가 사시고 내 방이 있는데 나가 살기로 한 건
마흔이 되기 전 내린 크나큰 결정이다.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꼭 그래야 할 것 같은 일이어서 한 일...
여행이 좋아서 한 일이라면,
독립은 글쎄다... 이것도 어떤 측면에선 당위성이 강한 것 같긴 하다.

잔소리꾼 아빠와 힘들게 살아갈 엄마를 생각하니 걱정은 되지만...
어차피 나 자신이 기쁨을 주는 아리따운 딸내미는 아니었기에
다소 늦었지만 나가기로 한 결정엔 후회없다.

보드카 레인이 부르는 노래 가사처럼
당신과 함께 갈 수 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이제 안녕을 고해야 한다.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흘러갔으면...
갑자기 심장이 강하게 뛰고 흥분되서 일을 망치진 않았으면..
그리고 집에 남은 엄마가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주위 사람들의 그럼 그렇지 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 한다...

온갖 비웃음을 견디고 살아가야 하지만
고생 중에도 잠시 좋은 날은 있지 않던가.

나이든 여자의 떨림

엄마도 그리 행복하지 못 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열심히 그래도 좋은 사람 있음 결혼하는 게 낫지... 라는 말을 곧잘 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더니 -

어떤 남자와 결혼하는지는 부차 적인 문제이고

사회생활하면서 나이든 독신여자가 겪는 인생의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느껴봤기 때문 아닐까 한다.

지금이야 사무직원이니 - 사실 이 직종처럼 간당간당한 직업도 없다 -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다만,

엄마가 속한 직업사회 - 청소부, 아파트 경비원, 마트 종업원,,, 이런 아주머니들이 많이 종사하는 업종에서도 가끔 나이들어 혼자 사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다. 나이들어 자식 결혼시켰거나 남편과 사별이나 이혼해서 혼자사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결혼하지 않고그냥 쭉... 나처럼 사는 경우 말이다.

근데 그런 경우 그렇게 멸시하는 사람들도 많고 쉽게 보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집에 남자가 없다 라는 말 은 곧 쉬워보인다, 보호받을 사람 하나 없다. 어쩌면 이런 의미로도 통하는 것 같다. 무시받고 질시받고... 하지만 나이먹어 성질 더럽다는 얘길 들을 순 없으니니 묵묵히 수양하는 존자의 길을 갈 수밖에...

참... 독신이 아무리 많아졌 고 앞으로 많아지겠지만,

나이든 여자가 홀로 산다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이다.

나이들고 가난하고 몸도 고단 한 나는

어쩌면 비호감대상 트리풀 크라운이네 ㅋㅋㅋ

그래도 웃음으로 넘길 정도로 속이 없으니 어쩌면 다행이지만.


팔월 일일날 이사한다고 엄마한테 말하니

엄마가

"야, 너는 나이도 많은데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도 아닌 그런 집 전세로 들어가 사는 게 속상하지 않냐? 나같으면 속상해서 속에서 열불이 나겠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속상하기까지는 않았다. 다만 집수리에 자신이 없어 그것이 좀 걸릴 뿐. 그래서 "그닥 속상하진 않아"라고 했더니...

은근 생각이 없는 무뇌아란다 ... 그말에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


준비를 잘 해서 잘 살자...

지금 생각나는 건 어쩌면 이 오래된 다짐밖에.

키가 커야 뭐든 좋음


밥먹기 싫어하는 채환이에게 작은 이모로서 항상 하는 말...
키가 커야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넌지시 말해준다.
키가 작아 할 수 없는 직업은 있지만 - 일정 키에 도달해야 하는 스튜어디스, 경찰, 기타 등등... - 키가 커서 할 수 없는 직업은 아동극 배우 아니고선 거의 없다는... 그러니 부지런히 커야 한다는... 조카는 예전에는 별 신경 안쓰더니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모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 듯 하다.
요즘은 밥도 잘 먹고 어린이용 칼슘제도 꼬박꼬박 챙겨먹는다고 한다.

어제 저녁 독일과 아르헨티나가 경기하는 걸 보니 -
독일 선수들의 키가 압도적으로 커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발재간은 좋은데 영 힘을 쓰지 못하고 한골도 넣지 못하고 눈물을 훔쳐야 했다...
여러 원인은 있겠지만
네덜란드와 일본이 하는 걸 봐서도 느낀 건,
현 대축구에선 체격조건이 중요하다는 것.
백구십은 넘고 체력이 되면 훨씬 우위에 서게 되는 것 같다.

그 러고 보면 마라도나가 대단하긴 하다.
보통 여자키정도인데 어떻게 그렇게 뛰어다녔을까.
키가 작은데 운동을 잘하려면
남들의 배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