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30일 수요일

변희재 2

변희재는 어쩌다가 구속까지 당했을까?
증거인멸과 피해자 위해 가능성 운운하지만 그가 조폭도 아니고 매일 유튜브 방송으로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을 늘어놨었기에 구속사유가 잘 이해가지 않는다.
조폭처럼 야구방망이나 칼 등으로 상대방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니고 손사장에게 자신과 같이 토론해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사람이 증거를 인멸할 리도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1. 일단 잡아넣은 후 새로운 범죄를 발굴해서 추가기소를 한다.
2. 피해자(라 주장하는) JTBc 관계자들에게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하거나 숨을 기회를 준다.
3.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할 방송을 원천차단한다.  가뜩이나 각 대사관을 돌아다니며 정부의지에 반하는 그의 존재가 은근히 성가셨기 때문이다...

대략 위 세 가지 이유가 실질적인 구속사유가 아닐까 한다.

월요일 마지막 방송에서 자신이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줬다며 정미홍 등에게 사과하고 손석희 사장 집앞에서의 시위는 이미 일년도 더 된 일이라고 항변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아마 저런 경우를 판사가 구속사유로 보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검사 세 명이 달라붙으면 없는 죄도 만들어낸다는 전직 재소자의 말이 전혀 틀림없음을 알아차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작금의 상황에서, 일단 한번 구속되면 나오기가 힘들 것이다...  벼르고 별러 구속시켰으니 세상의 온갖 더러움 다 맛보게 하고 싶겠지.
더구나 재소자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여름 아니던가 !
병실과 감방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은 진정 훌륭한 인격을 지닌 자일 것이다.  변희재씨가 그 예외적인 경우에 속하기를 바래본다.

아무리 미디어워치가 주류언론이 아니라 해도 kbs mbc 그 어느 방송사도 변희재의 구속에 한의하는 논조를 찾기 어렵다.  극우논객이 잡혔다며  고소해하는 분위기이다.  역시 같은 독립언론 몇몇만이 그의 안위를 걱정한다.

한국 언론인들은 대세에 순응하는 분위기가 일반인들보다 훨씬 강하다. 

2018년 5월 29일 화요일




하루하루는 온갖 지저분한 일들로 넘쳐나지만 오월은 일년 중 가장 꽃 특히 장미가 아름다운 시절이다.

2018년 5월 28일 월요일

끝나지 않은 복수

아마 국정농단과 국정원 털기에 이은 적폐청산3탄으로 법원이 낙점되었나 보다. 
같은 사안을 세 번이나 조사하면 처음엔 죄가 없던 사안도 죄처럼 보일 터이다. 
대법원장은 아마 의도치 않게 훗날 경영학과에서 필수과목으로 배우는 조직관리론에 '늦은 결정으로 조직 내 신뢰를 무너뜨린 케이스'로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3심제를 기본으로 생각하기에 조사도 최소 세번이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만약 다른 회사에서 같은 소재의 조사를 세번 한다면 그 반발이 실로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저런 조직은 또 다를 수도 있다.
좀처럼 검색에 오를 일이 없을 전직 대법원장이 거의 하루동안 실검1위에 오른 걸 보니 올 하반기 적폐사냥은 굳이 다른 소재거리를 찾지 않아도 될 듯.

법원 블랙리스트 관련자들도 감옥에 갈까.  검찰은 드디어 다 보낼 수 있겠다고 흥분하고 언론도 특집기사로 보조는 맞출 것이다. 
분명한 건 설령 감옥에 보내진 못하더라도 앞으로 시작될 드루킹 특검은 충분히 망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전 정권 온갖 일에는 득달같이 나서는 게 본인들도 부끄럽지 않을까.

아마 자신들의 모든 행동을 선으로 착각하고 뒤에서 하는 소리는 패배자의 잔소리 쯤으로 생각하기에
부끄러움 따윈 전혀 느끼지 않고 지난 날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추락하는 걸 짜릿한 쾌감을 갖고 바라볼 것이다.

2018년 5월 27일 일요일

당신의 밤과 음악 2

바로 어제가 당신의 밤과 음악의 마지막.  그러니까 이미선씨가 진행하는 마지막 방송이었다.  기분이 이상하고 묘했다.  좋아하는 방송이어서 그랬나 보다.  아나운서답게 이미선씨는 마지막까지 온화하고 친절한 말투로 방송을 마쳤다.  자신이 운이 좋은 진행자라고도 했고 많은 고별인사에 일일히 답하지 못한 걸 미안해하기도 했다.  몇 달 방송하고 마지막에 울음을 참지 못하는 연예인 진행자들과 달리 차분하고 완벽한 끝맺음이었다.

몇년 전 그녀는 정년퇴직을 하며 이 방송에 고별인사를 한 적 있었다.  그러다가 일년 반쯤 지났을까.  직원이 아닌 진행자로 다시 방송에 복귀했고 이젠 영원한 작별을 했다.  그녀의 품위있는 말투가 매력적이었기에 아마 다른 진행자가 방송해도 아쉬움을 떨치기 힘들 것이다.  

주말에 몰아 듣곤 했던 변희재의 유투브 방송도 그의 구속영장 청구소식과 맞물려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뻔죽거리는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높은 예측력을 발휘한 방송이기에 아쉽기 그지없다.  명예훼손으로 영장청구를 한다는 사실 자체도 우습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인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  과연 그는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6월에는 좀 더 하던 일에 집중하란 신의 계시인가.  
아쉬움은 크지만 어쩔 수 없다. 

2018년 5월 23일 수요일

슬프지만 진실 - 자살시도자의 경우

매일같이 한국에선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제 자살에 성공하는 확률은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 자살에 실패하는 경우는 어떤 삶을 살아갈까...
내가 왜 그랬을까 싶어서 후회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간다라...  그런 경우는 아주 좋게 풀린 경우이고 영화 속이나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당수는 향후 스스로 자살시도가 어려울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고 평생 침대 위에서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목을 맨 사람은 죽진 않아도 목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뇌병변장애과 시각장애를 얻어 스스로 평생 침대에서 꼼짝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고
열차에 뛰어들었으나 목숨은 건진 경우는 다리와 팔을 절단한 채 보호시설에서 입으로 모든 걸 하는 방법을 새로 배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강에 뛰어들었으나 목숨만은 건진 경우는 호흡기에 의지한 채 식물인간으로 나머지 생을 살아가는 경우도 많고
옥상이나 빌딩에서 떨어졌으나 산 경우, 팔 다리가 마비되어 활동보조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살고 죽는 것 중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낫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또한 모든 인간에겐 생에 대한 열망과 본능이 있어 자살 시도 중에도 중지하고 생을 갈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의료진과 공무원들 복지시설 종사자들 포함한 일반인들 모두는 죽음을 시도하는 사람을 말려야 할 의무가 있고 죽어가는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다가 그 시도가 실패한 경우
나머지 생은 혼자 손하나도 까딱하지 못할 상태로 중증장애 상태로 길고 긴 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자살이야말로 섣불리 시도해선 안 될 사안인 게,
실패의 경우 그 리스크가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사건이란 데 있다.   최소한 언어장애를 입고 중증 장애를 입을 경우가 아주아주 많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심사숙고해서
자살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 젊은 시절 자살 시도로 중증장애를 입어 5년이 지난 지금, 나머지 가족들은 병원비로 인한 파산상태에서  조현증과 우울증을 앓고 본인은 본인의 상태도 모른 채 가끔 눈물만 보인 채 누워서 살아가는 사람을 봐서 그런지, 사람들이 자살시도의 위험성을 보다 현실적으로 인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한국 청소년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건 다음 세 가지 - 자살시도하지 않기.  그리고 임신하지(시키지) 않기, 학교폭력하지(당하지) 말기 - 이것들만 피해가도 인생이 아주 꼬이진 않을 것이다.  공부건 뭐건 다 나중 일이다.

2018년 5월 22일 화요일

헛간을 태우다 對 버닝

요즘 인기라는 영화 버닝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 를 원작으로 했다기에 주말에 읽어보았다.  
괜찮은 소설이긴 한데 너무 짧고 특별한 사건이랄 게 없다.  31세 소설가, 비슷한 나이 또래 오렌지족(이렇게밖에 표현하기 어렵다), 21세 젊은 여자 이렇게 셋이 노닥이다가 오렌지족 남자가 자신의 취미를 정기적으로 헛간을 태우는 거라고 고백하고 여자는 사라진다는 내용이 전부.  헛간을 태운 게 발각되어 경찰이 추격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끼리 치정에 얽혀 싸우는 것도 아니다.  
하루키 소설의 대부분이 이렇듯 별 특별한 내용보단 분위기로 밀고나간다지만 평면적이고 답답한 느낌을 영화에선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했다.
책 뒷면 작가 소개란을 보며 하루키와 이문열의 나이가 같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한쪽은 젊음의 작가 한쪽은 꼴통의 이미지.하루키의 젊음도 깊이 읽어보면 별로 다가가고 싶지 않은 젊음이다.  주변엔 죽음이 가까이 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경증의 정신질환후보생들도 많다.  다만 그의 초기 소설 속  퇴근 후 생선을 구워 맥주와 곁들여 마시는 상쾌한 생활.  원하는 상대와 척척 사귀고 경제적 빈곤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쿨한 젊음의 이미지는 그간 내가 익숙했던 빈곤한 청춘과 대척되는 지점에 서 있기에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이 부러울 수 밖에 없다.   그 쿨한 이미지가  비루한 젊음의 실체를 감추고 있다.  
반대로 이문열의 꼴통 이미지도 다소 과장되어 있을 것이다.   실제 이문열을 만나본 사람들은 젠틀하고 따뜻한 작가란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대와의 불화로 정작 좋은 시절은 다 날려버린 불운의 작가.  동년배 하루키를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렇게 주말에는 원작소설을 읽었고 오늘 휴일엔 영화를 봤다.  얼마나 영화와 비슷한지 떠올리며.  주인공 종수는 20대 청년으로 여주인공 혜미와 같은 나이다.  이게 설정의 가장 큰 차이점.  오렌지족 남자(반포맨션에 사는 벤)는 소설 속 설정 그대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나오나 헛간이 아닌 한국 설정에 맞게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으로 변형되었다.
영화 속 혜미의 집은 꼭 나의 집을 그대로 찍었나 싶을 정도로 비슷했다.  사는 지역도, 지저분한 집구석도 단지 보일이같은 고양이가 없고 환영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정도?  아 이것만 해도 큰 차이지.
아무튼, 영화 속 종수가 30대 중산층 소설가에서 복잡한 가정사를 지닌 20대 일용직 노무자이자 소설가지망생으로 바뀌는 통에 이 영화는 유산자(벤)와 무산자(종수)의 대결처럼 그려진다.  부유한 삶을 꿈꾸는 혜미는 상품홍보모델일을 하며 판토마임을 배운다 아프리카로 여행을 간다 이것저것 하지만 끝내는 벤의  의해 최후를 맞았음을 넌지시 암시한다.  혜미와 종수를 잇는 끈은 파주 안에서도 어릴 적 혜미가 빠졌다는 우물로도 드러난다.  혜미의 가족들은 우물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릴 적손에 집을 나간 엄마는 우물을 기억한다.  우물이 불행한 사람들을 엮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인가...
영화의 소소한 재미 중 하나는 현 mbc사장인 최승호씨가 종수의 아버지로 나와 대사 한 마디 없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자존심은 강하지만 능력없는 영화 속 모습이 지금 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후반부는 소설에서 다루지 않은 헛간(비닐하우스)을 태운 후 상황이다.  헛간이 사라지는 걸 매일 체크하던 소설 속 남자처럼 종수 또한 집주변 비닐하우스를 매일 확인한다.  사라진 헛간이 없는 걸 기억해 내며 의문을 표하는 소설 속 남자처럼 종수는 벤에게 자신이 확인할 땐 태워진 비닐하우스가 없다며 따져물었다.
하지만 그대로 범인과 헤어지고 다시 12월을 맞는 소설 속 남자와는 달리 종수는 자신의 트럭으로 벤을 쫓고 그에게 책임을 묻는다.
난 이 부분이 약간은 억지로 보였다.  사실 어떤 스토리를 종결하는 가장 쉬운 해결책은 종종 살인같은 강력범죄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영화 역시 간단한 해결책으로 도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짧은 소설을 영화화할 때 이 정도의 극적 효과 없이 극을 마무리짓긴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다소 평범하긴 하나 그 짧은 소설 안에서도 하루키는 자신의 할 바를 다 했다.  주인공들이 모두 정지한 상태에서도 그 흔한 살인사건없이도 소설은 영화보다 더 위대하다는걸 보여준다.  그만큼 매력적이다.

헛간을 태우다 대 버닝의 승자로는,  헛간을 태우다의 손을 들어주겠다.   역시 아직까지는 텍스트가 영상을 이긴다.  Text kills Video.

2018년 5월 21일 월요일

공직자와 언론

인터넷에서 많이 까이는 공직자들은 과연 그 죄가 무거워서일까 언론에 찍힌 탓일까.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섞여있는 경우가 많겠지만 요즘엔 후자 탓이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물론 어느 정도 지위가 되는 공직자의 경우이다.

예컨대, 진경준 씨의 경우,
결국 징역 4년으로 끝맺었지만 뇌물죄가 적용안된 판결 내용을 두고 한겨레 신문에서 강하게 더욱 강하게 처벌할 것을 주장하는데, 사실 딴 신문은 어떨지 몰라도 한겨레 신문이 이런 사안에 거품무는 건 상당히 이중적이다.  왜냐면 이미 작년에 자사 기자간 살인사건으로 역시 같은 자사 기자가 징역 4년을 받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살인죄에 4년이라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솜방망이 처벌이지만 이 기자는 많다고 항소했다고 한다.  설마 살인죄는 뇌물죄에 비해 가볍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 신문사의 기본적인 아니면 말고 식 태도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항상 공직자에 대한 중한 처벌을 모토처럼 주장하는 한겨레를 포함한 언론들은 그가 평생 감옥에서 썩지 않게 된 사실에 못내 아쉬워한다. 그러나 설령 4년을 다 마치지 못하고 가석방된다쳐도 법조인으로서 그의 인생은 끝난 것.  고생길이 훤히 열렸다고 봐야 한다.
이쯤에서 법원이 봐주기 판결을 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은 계속 나오지만 반대의 경우-좀 심하게 엮인 것 아닌가-하는 의견은 제시하는 것조차 꺼려지게 만든다. 
과연 그럴까.
sharpsharpnews 라고 법조계  뒷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인터넷뉴스 사이트에 가면 그의 첫 재판부터 자세하게 볼 수 있는데, 여기 기자 말로는 뇌물죄 무죄는 어느 정도 예측가능했다고 한다.  
 결국 넥슨 주식으로 잡지 못하고 종합감사처럼 뒤져낸 처남 회사에 납품 강요죄 등으로 징역4년을 받다니.  그 역시 작전세력에 당했던 것 아닐까.   이미 재수없다고 검찰 내에서 뒷소문이 자자했다는 한겨레의 뒷담화식 기사에서 기자의 묘한 쾌감이 느껴진 걸 보면.
같은 종류의 실수를 해도 누군가는 청렴하고 칼같다는 칭송을 계속 받는 반면 누군가는 작전세력에 의해  제거된다. 어떤 지검장은 부인이 20억 주식거래를 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마자"흔들기"라는 보도가 나오며 곧바로 기사목록에서 사라졌고 어떤 국회의장은 포스코와 부당거래가 있었다는 녹취록까지 나왔다가 그 역시 증거부족이라 느껴서인지 신문사들의 뒤이은 취재가 없다.  어째 증거부족이나 흔들기는 꼭 여당쪽에서 나타나는지 그것 또한 의문이다.    국민은 개돼지라는 불멸어를 남기고 장렬하게 전사(했다가 퇴직금은 가까스로 지킬 수 있게 된)한 교육부 고위공직자 역시 기자의 억하심정 때문에 일이 커진 케이스이다.  
기자들이 지키려고 하는 공직자의 경우 안 좋은 기사가 나왔다가도 하루 이틀만에 사라진다. 자신들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공직자들은 비리가 있어도 계속 품고 가고 이해관계와 맞지 않는 공직자들은 기어코 교도소로 보내는 게 한국기자들인 것이다.

2018년 5월 20일 일요일

미혼모

서구 출산율의 절반에 가깝게  미혼모의 출산인데도 아직 모든 출산정책을 결혼부부 위주로 생각하는 게 안타깝다.  결혼했다고 모든 부부가 아이를 낳는 것도 아니고 결혼과 출산을 동일시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거늘 오직 기혼자의 입장에서 출산정책을 설계하니 출산율이 늘 리 없다.
해외유학도 많이 다녀오는 고위공직자 입장에서 서양의 비혼출산 약진을 모를 리 없다.  다만 마음 속 깊은 씹선비 마인드가 발상을 전환을 가로막고 있을 것이다.

2018년 5월 19일 토요일

공감하기 어려운 것들

1. 블랙리스트
사내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고 해고된 mbc 아나운서와 카메라기자는 필시 부당해고로 소송을 하기 바란다. 
뚜껑을 열고 보면 별거 아닐 가능성을 프락치로 몰았을 가능성도 분명 있다. 
과연 어느정도의 혐의를 그렇게 몰상식하게 포장했는지 궁금하다.  아마 처음부터 해고할 생각은 아니었고 지속적으로 망신만 줄 심산이었는데 배현진이 뛰쳐나가 자한당에 입당하고 MBC의 모순을 이야기하자 이왕 이렇게 된 거 핵심멤버들은 짤라야겠다 라고 생각한 것 같다. 
법원 역시 정치적이지만 그래도 해고를 다투는 사안에선 다소나마 노동자의 편을 들어줄 수도 있다.  이 경우는 현 경영주가 전 노동자들을 적폐로 몬 사건인데 경영주 편만 든다?  적폐 만들기에는 원칙 따윈 없는 것이다...
또한 해고와 별개로 사측에 손해배상도 청구해야 한다.
자신들의 예전 보도영상에 어묵이란 비하를 엮어 보도했기 때문이다. 누가 보면 자신들이 이영자 씨를 어묵에 비유해 보도했다고 오해할 수 있다.  자신들도 과거 영상에 이영자씨를 엮은 피해자인데도 사장이란 사람은 이영자씨에게만 사과하고 직원들에게는 전혀 사과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취급 당해도 싸다는 인식이 있어서일까...
근데 '그래도 싼 사람'은 본래 없는 법이다...

2. 몰카 시위
우리나라의 몰카범죄가 그렇게 심각한가?   잘 모르겠다. 인터뷰 중 어떤 여성은 몰카 두려움 때문에 공중화장실 가기 겁난다고 하는데. 

난 지저분해서, 담배 냄새 때문에, 가기 싫었던 공중화장실은 있었어도 몰카 두려움 때문에 공중화장실을 꺼린 적은 없는 것 같다. 
아마 지하철 같은 공용시설보단 여관, 노래방, 술집 등 은밀한 공간에서 몰카가 더 성행하지 않나 싶네.   그런 데 갈 일이 없으니 알 리가 있나. 
하긴 마흔 넘은 무늬만 여자와 20대가 대부분인 여자들과의 공통점을 찾기는 남녀의 공통점 찾기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남녀평등을 부르짓는 자들도 참 편파적인 게 오짓 젊은여상들이 반응하는 사안에만 열성이다. 
가장 여혐이 극에 달했던 사건은 바로 박근혜의 탄핵시기였다는 걸 이들이 인정할지도 모르겠다.  이 시기 사람들이 보여준 비열한 각종 의혹제기-  최태민과 박근혜의 부정을 기정사실화한 내용과 정유라가 자식이라는 둥 관저에서 섹스파티를 했다는 둥  - 이런 헛소문에 대해서 왜 여혐이란 말이 없는지 의문이다.


3. 인내심에 대한 정당한 평가
여성들의 인내력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여성특유의 섬세함으로...이런 표현은 특정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늘릴 수 있는 상당히 문제가 있는 표현이고 동의할 수 없지만 여성들의 인내심과 균질성은 더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그럼 남성은? 남자들은 그들간 약육강식논리가 강하게 작용한다. 잘난 사람은 한없이 잘났고 못난 사람은 끝없이 못났다. 여성들이 중상위에 몰린 반면 남자들은 최상위와 최하위에 몰려있다. 
단 그런 습성이 남자들의 창조성을 강화시켜준다. 위대한 예술가들 중 남자들이 압도적인 걸 꼭 여성차별의 결과로 해석할 순 없을 것이다.

2018년 5월 12일 토요일

봄날의 독서

4월말에서 5월 초 읽었던 책 요약.  별 다섯 개 만점으로 내맘대로 별점테러를 해 봤다.

1. JAZZ IT UP : 별 세 개
남무성이 지은 재즈역사의 큰 인물들 요약 만화책.
예전 강모림이 그렸던 재즈 만화책 JAZZ PLANET 과  비슷하다.   물론 책 특성상 비슷한 그림체와 필체가 비슷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왠지 강모림 씨 책이 원조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다.  강모림 씨 책은 그닥 팔리지 않았지만 팝평론가로서 이름이 있는 저자의 이 책은 어느 정도 팔렸을 것 같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퀴즈 선물로도 줬으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Portrait in Jazz 와도 비슷한 느낌이다.
이런 류의 요약 책들은 역시 다 비슷한가...

2. 슬픈 인간 : 별 다섯 개
  1900년대 초반 활동했던 일본 유명 작가들의 수필을 엮은 책.
  대동아공영권이다 전쟁이다 일이 많았던  20세기 초반이었지만 예술가들은 역경 속에서 꽃이 피는지, 그들의 글은 섬세하고 사려깊다.  인상깊었던 수필들 몇 구절을 적어본다.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수필 '피아노' 중
p. 39 ... 나는 길가로 나가 다시금 그 페허를 돌아보았다.  그제애 슬레이트 짖붕 사이로 자란 밤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피아노 위로 가지를 뻗은 모습이 보였다.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그저 명아주 수풀 속 피아노를 응시했다.  작년 대지진 이후 아무도 모르는 소리를 간직한 피아노를.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수필 '귤' 중
p. 45. ... 맘이 들뜰 만큼 따스운 햇살에 물든 귤 대여섯 개가 배웅하는 아이들 머리 위로 이리저리 흩어져 내렸다.  나는 엉겁결에 숨이 멎었다.  순식간에 모든 게 이해됐다.  이 아이는, 아마도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러 떠나는 이 아이는, 품속에 넣어온 몇 개의 귤을 창밖으로 던져 애써 건널목까지 배웅하러 나온 남동생들의 노고에 보답한 것이구나...
... 그 애는 벌써 내 앞자리로 돌아와 변함없이 살갗이 튼 뺨을 연두색 털목도리에 파묻고는 커다란 보퉁이를 감싸 안은 손에 삼등열차표를 꼭 쥐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뭐라 말할 수 없는 피로와 권태를, 이해할 수 없고 비루하고 따분한 인생을, 다소나마 잊을 수 있었다.


다카무라 고타로 '촉각의 세계'중
p. 108.... 조각가가 당신을 파악한다고 할 때, 그것은 당신의 나체를 파악함을 의미한다.  인간끼리는 의외로 서로의 벗은 몸을 잘 모른다.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껴입고 산다.  조각가는 부속물을 모두 떼어낸 당신 자신만을 보고자 한다. 


고바야시 다키지 '감방수필' 중
p. 155.  쇠창살 낀 창문 너머로 하늘을 보는데, 푸른색이 점점 말라가나 싶더니 이내 도쿄에 겨울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도쿄의'겨울이고 훗카이도에서 이십년 이상 산 내게는 겨울이라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
... 인간은 가을이 오면 독방에 앉은 자기 모습을 처음으로 거울에 비춰 보듯이 진지하게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p.  160~161.  ... 언젠가 목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간수의 눈을 피해 그의 독방문을 두르리며 '괜찮나, 아픈 데는 없나?'하고 물었다.  그러나 안에서"괜찮소" 조선인답게 또록또록한 발음으로 대답을 해준 적이 있었다.  그 옆방 동지가 이불을 꺼내며 무슨 말인가를 했다.  문득 귀를 쫑긋 세우고 들으니, 이불만 시켜주지 말고 인간도 햇볕을 쬐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닌가.  나는 엉겁결에 미소를 지었다.  그는 내가 아까 한 말을 듣고 곧바로 조직적으로 뒤를 이어준 것이다 !  "뭐야 아까 18번방이 하는 소릴 들은 거냐? 니들한테 진짜 질렸다"  보라! 나는 생각했다.  동지란 이런 것이다 !  나는 발로 바닥을 쿵쿵 구르며 응원했다.

하야시 후미코 '나의 스무살' 중
p. 192...  무엇이 될까 무엇을 할까 그런 생각도 없었습니다.  육친과 멀리 떨어져 도시의 귀퉁이에서 일하던 저는, 그즈음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는지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딱히 연애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척이나 외로운 생활을 했다는 것만큼은 그무렵 일기에 꽤나 소녀다운 감성으로 쓰여 있어서 혼자 웃음이 납니다. 

하야시 후미코 '저는 인간을 좋아합니다' 중
p. 198...  하지만 어찌됐든 저는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격렬했던 기억이 점차 바래가는 일본 땅 위에 멍하니 서 있습니다.  싸움에 패한 쇠락한 동족이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는 한, 저도 하루빨리 이 허무의 세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작가로서 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 길고 불행한 전쟁을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쉽게 잊을 수만은 없는 제가 비극적으로 느껴집니다... 저는 이 전쟁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3.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자서전 : 별 다섯 개
  영화자서전인만큼 자신이 영화를 찍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압축되었다.    히로카즈 감독은 작품들만큼 솔직하고 매력적인 인물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서도 몇 개를 적어둔다.

p.  32~45.  원더풀 라이프
"지금 그 자리에서 생성되는 것을 찍어 나가자."
... 그래서 두 번째 영화는 유럽인이 바라는 전형적인 일본영화와는 정반대로 만들자는 몹시 비뚤어진 생각을 했습니다.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천국은 기다려 준다> 라는 죽은 남자가 염라대왕을 상대로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매우 도회적이고 세련된 코미디가 있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떠올리며 천국의 입구를 무대로 하는 일번적 정서와 무관한 작품을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영화가 원더풀 라이프입니다. 

p. 145~157 .  망각
... 이를 테면 제 어머니가 추억으로 이야기하는 전쟁을 도쿄 대공습 뿐이었습니다.  "욕심부리지 말고 타이완과 한국만으로 그쳤다면 좋았을걸.  그랬다면 지금쯤은..."하고 주눅 들지도 않고 말하는 어머니에게는 명백하게 피해 감정밖에 없습니다. 
  이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식민지 타이완에서 나고 자랐는데 타이완 시절의 행복했던 청춘기 이야기와 중국에서 패전을 맞이하여 시베리아로 억류되어 강제노동을 한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본인이 무엇을 했는지)는 결국 말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수준이 이러하니 당연히 일본사 자체도 그런 형태를 취하겠지요.  가해의 기억은 없던 셈 치거나 다들 그렇게 했으니까라고 정색하거나 불문에 부칩니다.  즉 나라 전체가 잊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p. 158~ 178.   하나
... 혹은 저는 디스턴스 망각 하나 세 작품을 통해 의미있는 죽음과는 대조적인 것을 그리려 모색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 저는 사실 그다지 의미라는 형태로 삶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 이면에서 의미있는 죽음 의미없는 죽음이라는 사고방식이 나올 둣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건 위험한 것 같아서...

p. 296~ 317  그때였을지도 모른다.  텔레비전에게 '나'란 무엇인가.
... 가끔 어째서 텔레비전을 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는데 그러면 저는 뜻밖의 만남이 텔레비전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라고 대답합니다.  돈을 내고 극장으로 보러 간 작품만이 사람의 마음에 남는 것은 아닙니다.  우연히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 그후의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텔레비전 방송이 사람마다 몇편쯤 있지 않을까요...

2018년 5월 9일 수요일

미혼중년들이 쏟아진다

70년대 중후반생부터 평생 미혼인 여성들이 쏟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딱 내 세대부터이다.   나같은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건 안도해야 할 일인가? 이미 이런 상황을 겪었던 일본에서 독신여성들의 빈곤문제가 회자되는 걸 보면 머지 않아 처치곤란한 나같은 여성들이 사회문제화되리라는 걸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는 새 골치아픈 존재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그나마다행이지만...그래 직장을 퇴직한 후 진짜 문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많은 학자들은 결혼 이혼과 재혼 사별까지는 생각해봤어도 나같이 성직자도 아니고 예술가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독신들이 대량 탄생할 거라는 건 쉽게 예측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나역시 이런 삶은 예측하지 못했다. 나이들면 누군가가 나를 선택하고 또는 내가 선택해서 얘가 있건 없거 둘이 살아갈 거란 막연한 생각이 깨진 건 서른 일곱을 넘기면서부터였다.
이대로 세월을 더 넘긴다면 내추럴 본 솔로의 삶에 대해 한번 써볼 창이다. 아무도 이러한 종류의 삶에 대해 쓰지 않으니 나라도 써봐야겠다.

2018년 5월 8일 화요일

요양병원 또는 자택

어버이날이었던 어제 회사 일 때문에 요양병원에 갔다.  평균연령 80세의 노인들이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바래다보고 있었고 그들 가슴에는 병원에서 달아줬을 시든 카네이션이 달려있었다.   그걸 보니 진짜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늙어 저 침대에 누워있고 병원관계자들이 내 의사는 안 물어보고 카네이션을 달고 간다면? 한번도 어버이였던 적 없었던 내 기분은 진짜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꼬장꼬장한 노인네처럼 보이기 싫기에 그냥 내 몸에 큰 해가 없는 한 내몸에 무슨짓을 해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도 같다.
삼십오년에서 사십년 후 아마 나는 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취사와 개인위생의 어려움을 감수하고 집에 홀노 사느냐 얼마 안 될 돈을 갖고 요양원에 입소해서 남들이 날 험하게 대하는 꼴을 그냥 참고 사느냐 하는 현실적인 선택 말이다. 하기야 그것도 어느정도 사리분별이 가능할 때 얘기이지 치매라도 생기면 강제입소대상이 될지도 모르는 것. 무정한 세상이다.


2018년 5월 5일 토요일

마장호수

휴일을 맞아 마장호수 출렁다리를 다녀왔다



차없인 갈 수 없는 거리였기에 우리집 유일한 오너 드라이버 작은언니의 인솔 하에 부모님과 나 언니 그렇게 네 명이 다녀왔다.
여기 갔다 벽초지 수목원도 갔었는데 거긴 생각보다 별로였다. 어쩌면 이미 마장호수에 간 걸로 충분히 피곤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하루에 두군데 이상 다니는 건 힘들다. 하루 한군데만 가야 하는 저질체력이 되다.  그러나 이번 기회로 나의 정확한 체력을 알았다는 것 하나로도 나름 의미가 있다.


2018년 5월 4일 금요일

우박

출장갔다 오는 길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뚝뚝 우박이 떨어졌다. 전혀 아름답지 않고 맞으면 아픈 우박이 우산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어렸을 때 즐겨먹었던 싸구려 아이스바 폴라포와 비슷하기도 하고 누렇고 지저분한 편도결석같단 생각도 들었다.

비나 눈은 시원하거나 아름답지만 우박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불길함의 상징같다.  나비인 줄 알았으나 나방인 걸 깨달았을 때 소나기인 줄 알았지만 우박인 줄 알게 된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