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2일 토요일

봄날의 독서

4월말에서 5월 초 읽었던 책 요약.  별 다섯 개 만점으로 내맘대로 별점테러를 해 봤다.

1. JAZZ IT UP : 별 세 개
남무성이 지은 재즈역사의 큰 인물들 요약 만화책.
예전 강모림이 그렸던 재즈 만화책 JAZZ PLANET 과  비슷하다.   물론 책 특성상 비슷한 그림체와 필체가 비슷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왠지 강모림 씨 책이 원조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다.  강모림 씨 책은 그닥 팔리지 않았지만 팝평론가로서 이름이 있는 저자의 이 책은 어느 정도 팔렸을 것 같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퀴즈 선물로도 줬으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Portrait in Jazz 와도 비슷한 느낌이다.
이런 류의 요약 책들은 역시 다 비슷한가...

2. 슬픈 인간 : 별 다섯 개
  1900년대 초반 활동했던 일본 유명 작가들의 수필을 엮은 책.
  대동아공영권이다 전쟁이다 일이 많았던  20세기 초반이었지만 예술가들은 역경 속에서 꽃이 피는지, 그들의 글은 섬세하고 사려깊다.  인상깊었던 수필들 몇 구절을 적어본다.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수필 '피아노' 중
p. 39 ... 나는 길가로 나가 다시금 그 페허를 돌아보았다.  그제애 슬레이트 짖붕 사이로 자란 밤나무 한 그루가 비스듬히 피아노 위로 가지를 뻗은 모습이 보였다.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그저 명아주 수풀 속 피아노를 응시했다.  작년 대지진 이후 아무도 모르는 소리를 간직한 피아노를.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수필 '귤' 중
p. 45. ... 맘이 들뜰 만큼 따스운 햇살에 물든 귤 대여섯 개가 배웅하는 아이들 머리 위로 이리저리 흩어져 내렸다.  나는 엉겁결에 숨이 멎었다.  순식간에 모든 게 이해됐다.  이 아이는, 아마도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러 떠나는 이 아이는, 품속에 넣어온 몇 개의 귤을 창밖으로 던져 애써 건널목까지 배웅하러 나온 남동생들의 노고에 보답한 것이구나...
... 그 애는 벌써 내 앞자리로 돌아와 변함없이 살갗이 튼 뺨을 연두색 털목도리에 파묻고는 커다란 보퉁이를 감싸 안은 손에 삼등열차표를 꼭 쥐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뭐라 말할 수 없는 피로와 권태를, 이해할 수 없고 비루하고 따분한 인생을, 다소나마 잊을 수 있었다.


다카무라 고타로 '촉각의 세계'중
p. 108.... 조각가가 당신을 파악한다고 할 때, 그것은 당신의 나체를 파악함을 의미한다.  인간끼리는 의외로 서로의 벗은 몸을 잘 모른다.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껴입고 산다.  조각가는 부속물을 모두 떼어낸 당신 자신만을 보고자 한다. 


고바야시 다키지 '감방수필' 중
p. 155.  쇠창살 낀 창문 너머로 하늘을 보는데, 푸른색이 점점 말라가나 싶더니 이내 도쿄에 겨울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도쿄의'겨울이고 훗카이도에서 이십년 이상 산 내게는 겨울이라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
... 인간은 가을이 오면 독방에 앉은 자기 모습을 처음으로 거울에 비춰 보듯이 진지하게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p.  160~161.  ... 언젠가 목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간수의 눈을 피해 그의 독방문을 두르리며 '괜찮나, 아픈 데는 없나?'하고 물었다.  그러나 안에서"괜찮소" 조선인답게 또록또록한 발음으로 대답을 해준 적이 있었다.  그 옆방 동지가 이불을 꺼내며 무슨 말인가를 했다.  문득 귀를 쫑긋 세우고 들으니, 이불만 시켜주지 말고 인간도 햇볕을 쬐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닌가.  나는 엉겁결에 미소를 지었다.  그는 내가 아까 한 말을 듣고 곧바로 조직적으로 뒤를 이어준 것이다 !  "뭐야 아까 18번방이 하는 소릴 들은 거냐? 니들한테 진짜 질렸다"  보라! 나는 생각했다.  동지란 이런 것이다 !  나는 발로 바닥을 쿵쿵 구르며 응원했다.

하야시 후미코 '나의 스무살' 중
p. 192...  무엇이 될까 무엇을 할까 그런 생각도 없었습니다.  육친과 멀리 떨어져 도시의 귀퉁이에서 일하던 저는, 그즈음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는지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딱히 연애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척이나 외로운 생활을 했다는 것만큼은 그무렵 일기에 꽤나 소녀다운 감성으로 쓰여 있어서 혼자 웃음이 납니다. 

하야시 후미코 '저는 인간을 좋아합니다' 중
p. 198...  하지만 어찌됐든 저는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격렬했던 기억이 점차 바래가는 일본 땅 위에 멍하니 서 있습니다.  싸움에 패한 쇠락한 동족이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는 한, 저도 하루빨리 이 허무의 세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작가로서 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 길고 불행한 전쟁을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쉽게 잊을 수만은 없는 제가 비극적으로 느껴집니다... 저는 이 전쟁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3.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자서전 : 별 다섯 개
  영화자서전인만큼 자신이 영화를 찍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압축되었다.    히로카즈 감독은 작품들만큼 솔직하고 매력적인 인물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서도 몇 개를 적어둔다.

p.  32~45.  원더풀 라이프
"지금 그 자리에서 생성되는 것을 찍어 나가자."
... 그래서 두 번째 영화는 유럽인이 바라는 전형적인 일본영화와는 정반대로 만들자는 몹시 비뚤어진 생각을 했습니다.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천국은 기다려 준다> 라는 죽은 남자가 염라대왕을 상대로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매우 도회적이고 세련된 코미디가 있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떠올리며 천국의 입구를 무대로 하는 일번적 정서와 무관한 작품을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영화가 원더풀 라이프입니다. 

p. 145~157 .  망각
... 이를 테면 제 어머니가 추억으로 이야기하는 전쟁을 도쿄 대공습 뿐이었습니다.  "욕심부리지 말고 타이완과 한국만으로 그쳤다면 좋았을걸.  그랬다면 지금쯤은..."하고 주눅 들지도 않고 말하는 어머니에게는 명백하게 피해 감정밖에 없습니다. 
  이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식민지 타이완에서 나고 자랐는데 타이완 시절의 행복했던 청춘기 이야기와 중국에서 패전을 맞이하여 시베리아로 억류되어 강제노동을 한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본인이 무엇을 했는지)는 결국 말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수준이 이러하니 당연히 일본사 자체도 그런 형태를 취하겠지요.  가해의 기억은 없던 셈 치거나 다들 그렇게 했으니까라고 정색하거나 불문에 부칩니다.  즉 나라 전체가 잊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p. 158~ 178.   하나
... 혹은 저는 디스턴스 망각 하나 세 작품을 통해 의미있는 죽음과는 대조적인 것을 그리려 모색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 저는 사실 그다지 의미라는 형태로 삶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 이면에서 의미있는 죽음 의미없는 죽음이라는 사고방식이 나올 둣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건 위험한 것 같아서...

p. 296~ 317  그때였을지도 모른다.  텔레비전에게 '나'란 무엇인가.
... 가끔 어째서 텔레비전을 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는데 그러면 저는 뜻밖의 만남이 텔레비전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라고 대답합니다.  돈을 내고 극장으로 보러 간 작품만이 사람의 마음에 남는 것은 아닙니다.  우연히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 그후의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텔레비전 방송이 사람마다 몇편쯤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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