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1일 토요일

혼자 있기 좋은 곳 : 한국 영상 자료원

공항철도 디지털미디어시티역 9번출구에서 십분 정도 걸어가다보면 YTN을 필두로 JTBC, MBC, KBS 이런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엄청난 바람을 뿜어내고 있다.  그 사이 작은 건물에 한국영상자료원이 있다.
 이 자료원에서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한국고전영화와 최근 개봉영화를 무료로 상영한다.
화면도 크고 최신 영화도 비교적 많이 상영하기에 - 오늘 상영했던 영화는 "내일을 위한 시간"이었다 - 한 주에 한 번, 시간이 나면 여기에 앉아 영화를 보곤 한다.

집이 가까운 사람들은 참 좋겠구나 싶다.  우리집도 도서관은 두 개나 있으니 불평할 처지는 아니지만.. 평지에 저런 시설들이 주변에 있다면 지금보단 삶의 질이 향상될 듯.

세월호=베슬란 학교 인질극

반납일이 다 된 책을 빠른 속도로 읽기 시작했다.
책 제목은 리모노프
실제 작가이자 정치가였다는 리모노프의 인생을 픽션화시킨 작품이다.
책 전반부에 리모노프가 안나 폴리코프스카야 라는 이름의 기자를 추모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 시기 이전에 벌어진 사건들을 반추하는데... 베슬란 학교인질극을 생각한다.

2004년 10월.  체첸 테러리스트들이 남오세티야 한 학교에 난입해 인질극을 벌인 사건.
이 사건은 국제사건에 무심한 우리나라 TV에도 주요뉴스로 보도되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 때, 내 기억으론 며칠동안 테러범들과 대치상태를 지속하다 갑자기 특수부대원들이 진압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살아돌아온 이들보다 사망한 아이들이 더 많았던 최악의 참사였다.

속옷바람으로 뛰어가는 소녀들과 총포가 선연한 학교 건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세월호 희생자들처럼, 남오세티야 학교 희생자들에 대한 예우 또한 충분치 못했던 것 같다.

;.. 민간인 희생자는 대략 150명 선으로 추청되는데, 달리 사태를 해결할 수는 없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거나 자신들을, 자신들의 슬픔을 조금만 더 성의 있게 대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유가족들은 테러리스트들과 공범 취급을 받았다.  사건 이후 유가족들이 매년 개최하는 추모 행사를 경찰에서는 차마 원천적으로 금지는 못하고 불온 집회처럼 감시만 하고 있다.  추모식은 사실상 불온 집회가 되었다..."

이건 희생자들과 국민여론을 분리시키려 애써 온 어느 나라와 비슷한 행태이다.
나라와 사건 양상은 달라도, 국가적 슬픔 앞에 그 슬픔이 더 무거워지고 숙연해지는 걸 두려워하는 정부는 세계 어디나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마음 속 두려움을 국민들을 대상으로 펼쳐 보이느냐, 어렵더라도 다 받아들이고 겪어내는 건 큰 차이가 있다.

지금은 희생자들이 분노를 표출하도록 장을 열어두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들에게 순수하지 못하다는 말을 하기엔 일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베슬란 인질극 희생자 가족들의 현재 모습에서 세월호 사고 희생자 가족들의 불안한 미래가 읽혀진다.  이렇게는 되지 말아야 할 텐데, 과연...내년 2주기 때 희생자 가족들의 원한이 조금이나마 가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