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부뉴엘 영화의 의외성, 갑작스러움, 인간 존재에 대한 치밀하고 냉정한 시선이 잘 드러난 영화, 입 생 로랑의 우아한 의상을 입은 카트린 드뇌브는 칼에 배일 정도로 아름답다. 어쩜 테니스복도 그렇게 예쁘게 소화하는지...
의사이며 부유한 남편 피에르와 함께 결혼 1주년을 맞은 젊은 여성 세브린느는 어린 시절 성추행을 당한 아픈 경험으로 마부와 채찍이 등장하는 요상한 꿈을 꾸며 불안하게 살아간다. 그녀의 불안과 권태를 눈치챈 남편 친구 잇송은 그녀에게 대놓고 만나자며 유혹하지만 그녀는 겉으로는 철벽녀이므로 음침한 제안 따윈 거절한다.
커플 스키여행을 다녀오던 어느 겨울날. 같이 동행한 친구는 그녀들이 공통으로 친했던 어느 여자 이야길 꺼낸다. 조신한 줄 알았던 그녀가 매춘을 한다는 말을 듣자 '어떻게 그럴리가.. 어떻게 우리같은 여자들이?...' 를 외치며 경멸하지만 운전사는 그런 곳은 아직도 성업한다며 다만 사창가가 아닌 맨투맨 방식이라 잘 모를 거라며 관심있다면 데려다 주겠다고 말한다.
몇날 며칠 고민하다 포주 아나이스를 만난 세브린느.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5시에는 일을 끝마치겠다는 그녀에게 낮의 미녀라는 벨 드 쥬르 라는 명칭을 붙여준 아나이스. 그녀 역시 세브린느의 끼를 알아차린다.
처음에는 피곤하지만 의외로 생활의 활력소가 된 매춘업.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젊은 난봉꾼 마르셀의 스토킹을 당하면서, 업소에 손님으로 온 잇송을 만나면서... 그녀의 비극은 진행된다.
영화의 중반즈음, 갑자기 피에르의 직장을 찾아온 세브린느와 함께 산책하던 피에르의 시선이 거리한복판에 아무렇게나 놓인 휠체어에 꽂힌다. ' 왜 이게 그렇게 신경쓰이는지 모르겠어', '단지 휠체어 뿐이잖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다시 전처럼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집에 있던 그녀에게 찾아온 불청객 마르셀은 그녀의 남편 피에르를 쏜 후 경찰 총에 맞아 죽는다.
자신이 불길하게 생각했던 휠체어에서 아무 의사표현을 못 한 채 맹인용 안경을 쓰고 있는 피에르.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은 세브린느는 피에르가 다친 이후로 이상한 꿈을 꾸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연 이게 권태의 결말이었을까... 예기치 않은 손님 잇송이 찾아오고 잇송이 세브린느의 부도덕함을 말했다고 하는 순간. 화면은 피에르와 세브린느의 행복한 일상으로 전환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둘은 차를 마시고 꽃꽃이를 하며 거리의 마차 소리를 듣는다.
부르주아의 부도덕 ,종교의 위선을 극도로 싫어하며 '내가 무신론자임을 신에게 감사한다'는 패기넘치는 말을 남겼던 부뉴엘은 마치 부르주아들의 속마음을 탐한 것처럼 속속들이 그 자취를 남긴다. 세브린느의 환상 속에 등장하는 마차와 마부 두명, 그리고 채찍질은 욕망과 복종 모두를 상징하며 피에르는 가부장제 그 자체를 나타낸다. 그녀는 남편 피에르를 동정하면서도 무서워했던 것 같다. 그의 사회적 권력과 돈이 자신을 지켜주기 때문에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복종했지만 그의 남자답지 못한 모습에 염증을 느꼈던 것이다.
또, 지금 우리나라에서 문제되는 성매매 방식 - 오피스텔에서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 역시 이미 유럽에서 50여년 전부터 성행하던 방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긴 요즘같은 세상에 사창가가 있다 한들 장사는 잘 알 될 터이다.
루이스 부뉴엘의 이력 중 다소 신기한 건 한창 영화를 만들다가 거의 20여년 영화를 안 만든 기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 휴지기 이후론 활발히 만들었지만... 과연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내와 자식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좋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아동 성추행이란 치명적 약점을 지닌 우디 알렌같은 인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약간 까칠해도 겉다르고 속다른 인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위선적이지만 않아도 좋은 인간이라고 말할 조건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