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8일 화요일

세브린느 : 부르주아의 은밀한 환상

루이스 부뉴엘 영화의 의외성, 갑작스러움, 인간 존재에 대한 치밀하고 냉정한 시선이 잘 드러난 영화, 입 생 로랑의 우아한 의상을 입은 카트린 드뇌브는 칼에 배일 정도로 아름답다.  어쩜 테니스복도 그렇게 예쁘게 소화하는지... 

  의사이며 부유한 남편 피에르와 함께 결혼 1주년을 맞은 젊은 여성 세브린느는 어린 시절 성추행을 당한 아픈 경험으로 마부와 채찍이 등장하는 요상한 꿈을 꾸며 불안하게 살아간다.   그녀의 불안과 권태를 눈치챈 남편 친구 잇송은 그녀에게 대놓고 만나자며 유혹하지만 그녀는 겉으로는 철벽녀이므로 음침한 제안 따윈 거절한다.
커플 스키여행을 다녀오던 어느 겨울날.  같이 동행한 친구는 그녀들이 공통으로 친했던 어느 여자 이야길 꺼낸다.  조신한 줄 알았던 그녀가 매춘을 한다는 말을 듣자 '어떻게 그럴리가.. 어떻게 우리같은 여자들이?...' 를 외치며 경멸하지만 운전사는 그런 곳은 아직도 성업한다며 다만 사창가가 아닌 맨투맨 방식이라 잘 모를 거라며 관심있다면 데려다 주겠다고 말한다.
몇날 며칠 고민하다 포주 아나이스를 만난 세브린느.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5시에는 일을 끝마치겠다는 그녀에게 낮의 미녀라는 벨 드 쥬르 라는 명칭을 붙여준 아나이스. 그녀 역시 세브린느의 끼를 알아차린다.
처음에는 피곤하지만 의외로 생활의 활력소가 된 매춘업.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젊은 난봉꾼 마르셀의 스토킹을 당하면서, 업소에 손님으로 온 잇송을 만나면서... 그녀의 비극은 진행된다.
   영화의 중반즈음,  갑자기 피에르의 직장을 찾아온 세브린느와 함께 산책하던 피에르의 시선이 거리한복판에 아무렇게나 놓인 휠체어에 꽂힌다.  ' 왜 이게 그렇게 신경쓰이는지 모르겠어', '단지 휠체어 뿐이잖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다시 전처럼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집에 있던 그녀에게 찾아온 불청객 마르셀은 그녀의 남편 피에르를 쏜 후 경찰 총에 맞아 죽는다.
자신이 불길하게 생각했던 휠체어에서 아무 의사표현을 못 한 채 맹인용 안경을 쓰고 있는 피에르.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은 세브린느는 피에르가 다친 이후로 이상한 꿈을 꾸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연 이게 권태의 결말이었을까... 예기치 않은 손님 잇송이 찾아오고 잇송이 세브린느의 부도덕함을 말했다고 하는 순간. 화면은 피에르와 세브린느의 행복한 일상으로 전환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둘은 차를 마시고 꽃꽃이를 하며 거리의 마차 소리를 듣는다.

부르주아의 부도덕 ,종교의 위선을 극도로 싫어하며 '내가 무신론자임을 신에게 감사한다'는 패기넘치는 말을 남겼던 부뉴엘은 마치 부르주아들의 속마음을 탐한 것처럼 속속들이 그 자취를 남긴다.  세브린느의 환상 속에 등장하는 마차와 마부 두명, 그리고 채찍질은 욕망과 복종 모두를 상징하며 피에르는 가부장제 그 자체를 나타낸다.  그녀는 남편 피에르를 동정하면서도 무서워했던 것 같다.  그의 사회적 권력과 돈이 자신을 지켜주기 때문에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복종했지만 그의 남자답지 못한 모습에 염증을 느꼈던 것이다.  

또, 지금 우리나라에서 문제되는 성매매 방식 - 오피스텔에서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 역시 이미 유럽에서 50여년 전부터 성행하던 방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긴 요즘같은 세상에 사창가가 있다 한들 장사는 잘 알 될 터이다.
 루이스 부뉴엘의 이력 중 다소 신기한 건 한창 영화를 만들다가 거의 20여년 영화를 안 만든 기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 휴지기 이후론 활발히 만들었지만... 과연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내와 자식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좋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아동 성추행이란 치명적 약점을 지닌 우디 알렌같은 인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약간 까칠해도 겉다르고 속다른 인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위선적이지만 않아도 좋은 인간이라고 말할 조건은 충분하다.

2017년 11월 26일 일요일

인생경험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 가얄차게 재수했으나 마음같지 않게 좋은 성적이 안 나온 조카를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많이 아프지만 앞으로 인생에서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쓰디 쓴 인생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삼길 바란다.  어찌 되었건 수시 한군데라도 갈리면 소원이 없을 텐데...

2017년 11월 24일 금요일

진짜 페미니스트들

자기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사람들(특히 남성)은 믿지 않는 게 좋다.  기실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이미지로서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아마도 다음 세 사람은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한다.

1. 루이스 부뉴엘
루이스 부뉴엘이야말로 진정한 페미니스트다. 아무도 이렇게 강렬하게 여성의 욕망과 비열함을 동시에 잘 표현한 감독은 없다.   세브린느나 트리스타나, 비리디아나에서 보여준 여성에 대한 냉정한 시선은 역설적으로 그가 20세기 드물었던 남성 페미니스트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 록산 게이
  그녀의 진가는 평론이나 에세이에서가 아니라 단편소설에서 드러난다.
  '어려운 여자들'이란 단편소설집엔 그녀가 바라본 인생에서 투쟁하는 여성들의 여러 모습이 담겨 있다. 

3. 피에르 퀴리


  그 어려운 시기에 아내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페미니스트라는 호칭을 붙일 만 하다.  마리 퀴리에겐 말만 많은 사람보단 이런 사랑이 필요했을 것이다.

능력검증


시험공화국이라도 비판하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절규해도 학교와 회사취업에 일정부분 시험이 들어가야 그 결과를 수긍하게 되는 건 중요한 가치이자 사회적 합의이다. 
만약 지금 분위기대로 각종 자격시험은 철폐하고 면접과 서류로만 사람을 뽑는다면 그건 이태리같은 인맥공화국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누군가 가족주의가 강한 한국과 이태리 두 나라 중 한국은 성장하고 이태리는 망한 이유로 군사주의와 획일화가 끼친 좋은 면이라고 하는 걸 보니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 독재로 갈 순 없고 결국 사회에 뿌리내린 그나마의 공정경쟁을 더 이상 망치지만 않았으면 싶었다. 


2017년 11월 19일 일요일

사운드 오브 뮤직 & 백투더퓨처

영상자료원에서 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과 백투더퓨처를 보고 왔다.

먼저 사운드 오브 뮤직
오스트리아의 장엄한 산맥을 보니 예전 겨울에 잘츠부르크에 갔었던 기억이 새로웠다
오스트리아는 도시가 모두 다 예쁘다.
빈, 잘츠부르크, 그라츠...
클림트와 비트겐슈타인, 슘페터와 프로이드, 슈트라우스와 모차르트의 나라 !
아름답고 장엄하고 안정적인 나라.
앞으로도 여행이 아니라면 가기 어렵다는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이 영화를 보고 나니 - 트랩 대령같은 잘 생긴 사람이라면 아이가 일곱이 아닌 열 명이 있어도 여자들이 따르겠거니 싶었다.
역시 남녀를 불문하고 잘생김이 최고인가...
사람을 처음 볼 때 외모가 중요한 건 말할 나위 없다.

백투더 퓨처.
주인공이 같은 과거를 갖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게 의아했다.
내가 과거로간다면 엄마에게 절대 아빠랑 만나지 말라고 신신당부할 텐데.
아무리 영화라고 신기하기도 하지.

떄늦은 오래된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길. 칼바람이 매서웠다
올해도 다 갔다고생각하니 외로워진다

2017년 11월 18일 토요일

내게 5천억원이 있다면 아마도

다빈치 그림이라고 평가되는 -그러나 아닐 가능성이 농후한 - 그림이 무려 5천억에 팔렸다는 기사를 읽고 나니 내게 5천억이 있다면 최신 현대미술품 1천여점쯤 사들여 미술관을 열 텐데 싶어 아쉬웠다. 

피터 도이그의 우울한 그림들, 라이언 맥긴리의 벌거벗은 젊은이들 사진들처럼 앞으로 오를 가능성이 확실한 작품을 사야지 5천억 갖고 딱 한 장 사면 그건 너무 허무하다. 

암만 예술은 사기라고 해도 출처 불가능의 작품을 왠만한 대기업 하나 사는 것과 같은 가치를 매기는 사람이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2017년 11월 14일 화요일

긴급체포

긴급체포라 하면 현행범이나 강력범이 주요대상이건만 이번 박근혜 관련 사건에서는 국면전환용으로 긴급체포를 애용하는 것 같다. 
출국금지된 사람이 어디 갈 수도 없고 이제 와서 증거인멸할 시간도 없고 순순히 다 부는 분위기인데 지난번 전 국정원장 때도 70넘은 노인네를 16시간 조사하는 걸 보면 - 물론 그 시간 내내 조사하진 않았겠지만 - 박근혜 관련된 모든 수사 건은 분명 피고인의 권리를 억압하고 있다.  아무리 박근혜가 밉다고 일주일에 재판 네 번은 피고인의 권리를 현격히 침해하는 것 아닌가.  국제변호사 그룹이란 곳도 차가운 감방 운운하기 전에 일주일에 재판 네번을 걸고 넘어졌어야 하는데 어찌 핀트를 잘못 맞춘 것 아닌지.
이럴 떄 이용하라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졌건만 고관대작들의 몰락을 다 고소해하는 분위기이고 망신주기는 옵션인지라 나서지도 않을 것 같다 
나중에 피고인의 권리가 현격히 침해된 경우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학회지에 실려도 이상하진 않을 것이다. 

국립재활원

전에는 수유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냐 했지만 경전철 우이선이 생기고부터는 가오리역에서 매려 걸어가면 된다.  샛노란 은행잎이 거리를 덮은 날 여기서 화계사까지 걸어봐도 좋겠다.  회사에 복귀해야 해서 그냥 발길 돌렸지만.




2017년 11월 4일 토요일

2017년 가을

작년부터 이사가야지 생각했는데 여태 시도조차 못 하고 있다.
너무 경사진 언덕. 그리고 어려운 대중교통 이용.
하지만 서울 복판에 육년째 올리지 않는 전세오피스텔이란 사실이 나를 주저앉힌다.
이사해서 이상한 이웃을 만나거나
이년마다 가격인상하는 집주인을 만나거나
변태들이 득실대는 주변이라면 어쩌지.
걱정을 떨치고
떠날 땐 떠나야 한다.
떠나지 못해 후회하는 것보다
일단 지르고 후회하는 게 더 낫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