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30일 토요일

어느 소설가의 초상

도서관에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포함된 박태원 중단편집을 빌려왔다.

박태원 채만식 이태준... 이러한 일제시대부터 해방초기 작가들 소설들은 예전 고등학교 때 어쩔 수 없이 교과서에 포함되어 의무적으로 읽었었다. 그 떈 별 느낌없었는데 나이들어 아무 의무감없이 읽어본 이들의 소설집은 너무 재미나고 이 당시 소설들이야말로 서사라는 소설의 원형을 잘 나타내 주는 것 아닌가 싶었다.

박태원 이란 작가는... 천변풍경 소설가 구보씨 일일 등 눈부신 작품생을 쏟아내던 작가인데... 남로당 (남로당 이란 이름이 참 생경하구나.. 한참 지리산 빨치산 남부군... 이런 작품들이 쏟아져나왔었는데...) 계열 문학 단체였던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에 취임한 걸 기점으로 전향성명서에 서명도 한 적 있었으나 한국전쟁시 월북하여 파란만장한 후반기의 인을 살아가게 된다.

피바람부는 숙청으로 창작금지 조처를 받기도 했으나 갑오농민전쟁이라는 필생의 역작을 집필하고 반신불수와 실명 등 질병으로 얼룩진 고단한 인생길을 마감한다.

이것이 대략적인 그의 인생이다.

갑오농민전쟁이 어떤 소설인지는 읽어보질 않아 모르겠고...
적어도 그가 아직 월북하기 전 소설들은 소시민에 대한 애정, 위트, 해학이 넘치는 소설들이 많은 듯 하다.

인상깊었던 구절들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중에서) 이 소설은 왠지 소설가 자신을 묘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찍이 그는 고독을 사랑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고독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심경의 바란 표현이 못 될 게다. 그는 결코 고독을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도리어 그는 그것을 기지없이 무서워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고독과 힘을 겨루어 결코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그런 때 구보는 차라리 고독에게 몸을 떠맡겨버리고 그리고 스스로 자기는 고독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꾸며왔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 길은 어둡고 중에서) 가난하고 피곤한 소녀 향이의 인생역투기. 그녀가 서울에서 마음의 행로를 따라 목포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기까지 총 열 세 개의 짧은 단락으로 구성된 게 인상적이다.

--- 과거 팔 년간의 온갖 쓰라린 일, 온갖 슬픈 일, 온갖 괴로운 일을, 이제 다시 생각 속에 되씹어보더라도 그것이 무슨 보람이 있으랴. 오직 그의 마음은 좀더 아프고 그의 앞길은 좀더 어두워질 것에 지나지 않지 않으냐.


(거리 중에서) 가난한 집의 생활을 이끌어나가도록 규정된 청년이 거리에서 느끼는 모순된 감정.
맨 마지막 격렬한 청년의 심리토로가 인상적이다.

=== 거리 위에서 나는 언제든 갈 곳을 몰라 한다. 내가 아무런 볼일도 갖는 일이 없이 그냥 찾아가 만나줄 벗이란 다섯 손가락에도 차지 못하였고 물론 같은 이를 매일같이 찾아보는 수는 없었다.

--- 내가 그에게 바로 지금 찾아갔던 것임을 일러주었을 때 그는 순간에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하고, 그의 눈물이 방울방울 내 손등에 떨어지는 것도 그는 꺠닫지 못하였다. 아무리 신경쇠약이라 하더라도 나의 심방이 그렇게까지 그에게 감격을 줄 것을 나는 결코 예기하고 있지 못하였으므로 한참이나 나는 오직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이나, 문득 내가 그를 만나보려 한 본래의 목적을 생각해내었을 때 나는 갑자기 그의 지나친 감격에 불쾌를 느꼈다. 만일 이 경우에 내가 돈 이야기와 같은 것을 꺼내기라도 한다면 그는 응당 나의 심방에 대하여 그렇게도 자기가 감동하였던 것을 뉘우칠 것이요 그래 그는 제 자신 불쾌하지 않으면 안 됨으로써 내게까지 그 우울을 나누어줄 것에 틀림없었고 설혹 뜻밖에도 내가 그에게 돈을 취하는 것에 성공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나는 바로 그의 약점을 이용하여 내 몸을 이롭게 하였다고 그러한 비난을 받아도 어쩌는 수 없는 노릇이라 그래 나는 좀처럼 냉정해지지 않고 그저 그대로 그동안의 자기가 얼마나 고독하였었던가를내게 호소하기에 열정인 그를, 그와는 훨씬 먼 거리에서 그에게 대하여 내 마음속에 일종 격렬한 증오조차 느끼며, 언제까지든 불쾌하게 또우울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성탄제 - 마치 파란 대문의 모태가 된 듯한 소설이다. 파란대문에선 주인집 여대생이 매춘을 함으로써 창녀와의 의사소통에 성공(?)하지만 이 소설에서 기생으로 살아가던 언니 영이는 아우 순이마저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에 대해 씁쓸함과 처량함이 베어난다는 게 차이점이다.

--- 영이는 생각난 듯이 곁에 드르누운 어머니와 또 아버지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물론 지금 건넌방에서 순이의 몸위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고 있을 게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놀라지 않고 또 슬퍼하지 않는다.


'이것이 인생이란 것이냐?'


갑자기 몸이 으스스 추웠다. 영이는 베개를 고쳐 베고 눈을 감았다. 어인 까닭도 없이 운동회 날

본 순이의 모양이 눈앞에 선하다. 이윽히 그것을 보고 있다 영이는 한숨을 쉬었다.


'너마저 집안 식구에게 자장면을 해다 주게 됐니? 너마저.....'


영이의 좀 여위 뺨위를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렇게 눈부신 작품을 쏟아내던 작가도 시대의 격랑 속에서 굴곡진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 굴곡이 그에게 어떤 작품을 남겼는지는 먼 훗날 통일교과서에 그의 월북 후 작품이 실리게라도 된다면 확연히 알 수 있으리라.

조직의 흥망성쇠

입사할 적에도 몇년 후엔 우리 조직이 내년이면 합쳐질 어떤 조직과 합병될 거란 얘길 듣긴 했다.

하지만 그 떄만 하더라도 우리 회사가 갑의 위치에 있고 지금 우리가 눈치를 보고 있는 해당 조직은

을의 위치일 거라 착각했던 것 같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개념이 없었다고나 할까... 어쩄든 내가 입사한 이후에도 적게나마 직원을

채용하긴 했었으니까, 또 당시만 하더라도 조직이 점점 뻗어나가는 시기였으니 그런 생각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 시기에 태어났던 조카 채환이가 이제 내년이면 중학생. 내년부터 합쳐진 공룡조직이 태어난

다. 난 그냥 남기로 하여 당분간 쪼그라든 회사에서 뭔가를 또 하겠지만.

십이년을 끌어오다 얼렁뚱땅 내년부터 새롭게 정비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입사하던 그 시기가 한창 우리 회사가 웅비하던 시기가 아닐까 한다. 여러 장미빛 전망도 속출했었고(적어도 내부적으로는) 주변 직원들도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가 넘쳐났다. 서비스교육이니 고객응대교육이니 잡스런 교육도 많이 받고 피곤한 일들도 많이 겪었지만 그래도 일 자체에 대해선 모두들 열심히 하려는 자세가 넘쳐났다.

물론! 지금도 열심히 하려는 자세는 기본적으로 되어 있다. 하 지 만...

그 모든 게 예전처럼은 아니다.

이제 축소되는 회사이니만큼 갈 사람 남은 사람이 정해진만큼 앞으로가 설레이기보단 모든 것이 정해진 결말을 향해서 나아가는 귀경길의 느낌이랄까.

갈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남은 사람들은 과연 내년 일월 일일자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궁금해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 회사도 이제 "가을"을 겪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입사했던 시점이 한창 성장통을 겪는 시기였던 것 같고 지금도 통증은 통증인데 만성화된 통증, 류마티스같은 조절만이 가능한 가을날에 더 심해지는 점점 쇠약해지는 그런 시기를 겪고 있는 듯.

언제 어디서나 조그만 월급을 받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어도 해야 할 일은 분명하게 해날 것이다. 그건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아마 대부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더 이상 없다. 이것이 소멸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 조직 구성원의 육감이라면 너무 오버질일까.

내일 또 지나면 11월이고 월요일!

한달을 시작하기 좋은 요일이라고 라디오 아침프로에선 설레발을 쳐댈 테지.

어떤 변화에도 불구하고 난 그 자리에 변치 않고 서 있다.

비록 좌표를 잃어버렸다 한들 난 필연적으로 그 자리에 서 있을 것만 같다.

2010년 10월 29일 금요일

외로운 사람들

회사에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간 못준다고 버티기작전으로 일관한 성과급과 소급분을 준다고 하여 갑자기 백만원 넘는 돈이 통장으로 입금됬다.

이게 다 쫓아내기 전 살찌워서 내보내려는 전략이라고 흉흉한 분위기도 있었으나,
그래도 일단 없는 살림에 돈이 들어오니 직원들 마음은 흐뭇해져서 오늘 하루 사무실 분위기는 급 화기애애 ^^

가만히 두면 야금야금 써버릴 것 같아 저축은행 육개월 예금에 넣어두러 점심시간을 이용해 종각역에 내렸더니...
G20 어쩌구 때문에 경찰들이 꽉 차 있고 쓰레기통도 없애고... 난리도 아니다.

한술 더떠 다음달 이십일 삼성역으로 출근하는 직원들은 그 날 하루 임시휴무라고 한다.
아 이래서 좋은 곳으로 출근해야 해... 라며 부러워하는 직원들도 있지만... 예전에 아셈이니 에이펙이니 온갖 회의를 할 때에도 그런 적 없는 것 같은데... 너무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쉬는 건 부럽다!

그렇게 저축은행에 돈 백만원을 입금하고 돌아오는 길. 고엽제환우회란 팻말 아래 "고엽제 환자 처우개선과 G20 성공개최를 위한 결의대회" 라는 상당히 안어울리는 조합의 깃발 아래, 노란 조끼를 입은 반백색의 준할아버지들이 김정일 부자에 대한 분노와 정부의 안보태세를 질타하는 각종 플랫카드를 손에 어정쩡하게 들고 작지만 가열찬 목소리로 구호선창을 하고 계셨다.

한편으론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몰아부치는 고집센 노인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제껏 싸워온 아픔에 대한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 물론 요즘은 연금이 다소 나온다고는 한다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기도 하다.

손에 든 깃발만큼이나 이들의 정부에 대한 감정도 이중적이고 복잡다단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G20 의 성공적인 개최 운운하는 걸 보고 있자니, 이게 올림픽이나 F1도 아닌 회의인 이상 성공이라는 건 곧 무슨 결론이 도출된다거나 신세계 질서가 열린다거나 그런 종류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이틀동안 회의로 갑자기 천지개벽할 결과가 도래할 것 같지는 않고...

다만 분명한 건, 11월이 지나면 물가는 채소값을 필두로 더더욱 폭등하고 환율은 1100 원대를 하회하게 되지 않을까. 이래저래 인플레이션의 도래는 분명해 보이고 이번 겨울은 긴축재정에 올인해야 할 것이다.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겨울의 환

중학교 이학년 초 바야흐로 천구백팔십구년. 그 때까지만 해도 소설책을 사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시기.


설날 세뱃돈 받은 돈으로 이상문학상 수상집인 "겨울의 환"이란 소설책을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잎"과 함께 집근처 장미서점에서 샀었다.


잎속의 검은잎 이야 지금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시집이 되어버렸고...

겨울의 환 은... 수상작 외 여러 단편들이 많았었는데,

대 상 수상작가의 얼굴이 엄마뻘되는 나이답지 않게 너무 고와서 놀랐고 전통서사방법을 따르고 있는 소설이라 - 요즘 많은 현대소설의 흐름인 의식의 흐름을 따라 뜬금없는 얘길 늘어놓는 방식이 아니라 - 어리고 지금처럼 여전히 무식했던 나도 크게 무리없이 읽을 수 있었다.


겨울의 환 이란 제목에서 풍기듯 겨울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어떤 나이든 여인이 근처 야산에 불을 지르고 나서 그것을 TV로 태연히 지켜보면서 자신이 사랑해 왔고 지금 사귀기 시작한지 그닥 오래 되지 않은 불륜관계 연인에게 보내는 일종의 연서 형식이다.


그 녀의 실패한 결혼 얘기, 가족들과 어릴 적 겪었던 육이오 이야기, 동치미 뜨러 가던 어린 시절, 혼수는 제대로 못해줘도 버선과 속옷은 꼭꼭 챙겨 시집보낸 빤한 형편의 친정어머니 이야기, 그리고 그 사이사이 겨울의 추운 이미지들이 녹아 있다.


나이가 들면 추억에 잠기는 시절이 많아지는가.. 좋든 싫든 하나의 사실로만 그것을 대하기에 예전보다 떠올리기 괴롭진 않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늙은 여자의 좋은 점이지.


전쟁을 겪지도 시집을 가보지도 않았고 버선을 챙겨주는 그 누구도 없지만... 그녀가 느꼈던 겨울의 이미지가 내가 느끼는 춥고 을씨년스러운 겨울의 이미지는 닮아 있다.


오늘이 마치 그 소설 속 분위기처럼 스산하고 차가운 기억이 거리를 휘젖고 그와 관련된 기억들이 피어나는 날이었다.


하루 집에 있으면서 옷정리를 좀 했다.
생각보다 옷이 많다는 데 놀랐다...

그것도 죄다 비슷한 색깔, 비슷한 옷으로만...

역시 사람의 취향은 변하기 힘든 것일까.

평일 동네 풍경

등이 며칠간 좋지 않아 하루 휴가를 냈다.
요즘같은 인사이동철에 과감히 휴가를 내다니... 정말 못말리는 직원이다. 난...

지병이 있으니 병원에 가도 답은 없고...
그렇다고 죽을 병은 아닌 듯 하여
엄마 아빠집에서 찜질하고 누워있다 보니 좀 나아진 듯 해서 밖으로 나와 오랜만에 평일 동네를 걸어보다 느낀 건 -

노인들이 참 많구나. 공원 여기저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정말 많다.
노령화가 심각하긴 하구나 싶었고
공원에 있는 잠깐동안 수많은 비행기들이 허공을 질주했는데
인천공항이 생기면서 많이 줄었다 싶었지만
일본과 중국행 비행기들이 죄다 김포로 몰리면서 다시금 굉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몇년전 소음피해 운운하면서 소송걸 준비하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 사람들 아직도 동의서 받고 있던데... 왜 소송은 하지 않는지.. 당사자요건이 아직 충족되지 않아서 그런가.

한나절 누워있다가 다시 한나절 활동하면서 느낀 건
평일 집에 있으면 참 갑갑하단 것이다.

2010년 10월 25일 월요일

좋은 블로그 모음

어쩌다 만들게 된 나의 블로그...
별 볼 일 없는 공간이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공간이다.
거의 신변잡기만 쓰는데도 이제 거의 삼십에 육박하네...
오늘은 다른 사람의 블로그들 중 내가 즐겨 찾는 곳을 써 본다.
다 적어두고 보니 이건 아무 기준도 없지만... 난 기본적으로 냉정하지만 그 안에 약간의 따뜻함이 담겨있는 블로그를 좋아하는 듯.

1. bahamund.tumblr.com
스튜디오 환타지아 2.0 이라는 미국 교포가 만든 블로그.

경제현상, 과학철학, 일상 등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과 좋은 번역문을 접할 수 있다.

단, 여러 악플러에 시달리다 보시니.. 이젠 글을 저장 후 몇 개만 남겨두고 바로바로 삭제하시는 듯 하다... 나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더 길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독자로서 수긍해야 할 듯. 사실 이런 추천 블로그로 올리는 것도 싫어하신다고 써놓으셨지만... 나의 블로그야 워낙 관람객이 적으니 별 상관없을 듯.

2. retired.tistory.com
88만원 세대라는 책으로 유명한 우석훈 박사의 블로그.
가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자기고백적인 글들이 올라오는데 참 공감이 많이 간다.

3. blog.naver.com/text92
강원랜드에 다니는 분 같은데, 일본 서적과 문화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볼 수 있는 즐거운 블로그

4. blog.naver.com/astra_knights
정치 경제 현상에 대한 여러 펌글과 자신의 생각을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본 블로그.
북한 관련 흥미있는 글들이 볼 만 하다.

5. foog.com, sonnet.egloos.com
여기서도 재밌는 번역문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도 좋은 글을 많이 써 보리라 다짐하면서 ...

갈매기 - 여름의 기억

벌써 오래전... 그러니까 6월
노조에서 무박 1일로 을왕리 근처 어떤 곳을 다녀왔다.
열시 반까지 회사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차를 하고 가니 갈매기 혹은 그와 비슷한 어떤 새들이 무수히 노니는 갯벌에 도착했다.



오년 전 척추측만증 수술을 받을 줄 알고 한달 휴직을 낸 적 있었다. 그런데 갑상선항진증이 잘 낫지 않아 수술을 받지 못하던 차 작은언니와 함께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체호프의 작품 "갈매기"를 함께 보았다.
등장인물들과 제목이 기막히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
오늘 저 새들을 보니 다시금 그떄의 그 기억들이 떠오른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갯벌체험학교라는 이름하에 많은 가족들이 놀러왔었다.
바닥에는 많은 얘들이 있다면 이런 곳에 오는 것도 좋을 것이다.


둘이서 손을 잡고 건너는 연인들도 많이 보인다.
오늘의 목적은 회먹기...
나이가 들어가면서 회를 먹으면 너무 부대껴서 조개구이만 먹었다.
좀 심심하기도 했지만 - 그 때 먹었던 대하,,, 새우... 갯벌... 기억난다. 다시 가고 싶다.

추억 들국화 - 어떤... 가을

낙엽이 떨어지고

설레이고

갑갑하고

다른 방법은 없고

또 가을

또 가을

진한 녹차나 마셔볼까

전화를 걸어볼까

어디론가 훌쩍 가고 싶어...


(그리고 기타연주 피아노 전인권의 귀청 찢어지는 목소리)


집에 굴러다니던 추억 들국화 테잎이 듣고 싶어 찾아봤더니... 아직까지 있을 리가 없다는 걸 확인함에 그쳤다.


아마 있어도 한참 늘어져서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추억 들국화 앨범엔 이 곡 말고도 좋은 노래들이 참 많다.


전인권이 아직 많이 마르고 여배우에 대한 짝사랑과 인권이 라이프 따위 TV광고로만 기억되지 않았던 시기라서 그런지 목소리도 더 힘차고 자신감있다.


락음악에 피아노가 이리도 잘 어울리다니 라는 생각을 가져다준 허성욱의 피아노 연주도 매력적이고...


외롭게 지내온 날들이 나에게 다시 또 찾아온다 해도

나는 나의 길을 가겠어요

자유로운 마음 된다면

그런 꿈들 잊어버린다 해도

내가 그 꿈 잊을 수 없다 해도

나는 계속 꿈을 꾸겠어요


어딘선가 울리는 북소리...


드럼 연주가 힘있고 자신에 대한 주문을 외는 듯한 가사의 북소리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볼 수 있다는 - 내가 본 게 히피인지 모르겠으나 많이 퇴색된 듯한 - 히피들의 모습을 노래한 머리에 꽃을.


그리고 좀 길긴 하지만 김장훈과 이승환이 쥐어짜듯 부른 것보단 훨씬 나은 사노라면...


그 떄 허성욱이 사고사하지만 않았다면 전인권의 음악인생은 적어도 지금보단 훨씬 나았을 것 같다.


2010년 10월 19일 화요일

떠나는 자와 남는 자

시간외 근무를 정성껏 하였으나 -
서무의 실책으로 여섯 시간을 다시 근무해야 한다는 -_-
어차피 이번주는 어렵고
이십일 이후
열심히 달아야 겠다...






- 높은 곳에 올라가니 보이는 건 십자가가 압도적으로 많다... 우리나라, 특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교회가 많긴 많다.
- 독일문화원은 문을 닫았다. 정확히 말하지면 서울역 서울스퀘어 부근으로 이전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왠지 아쉬워졌다. 작년 이맘때 잠시 여길 끙끙대며 올라와 다녔었는데...
- 어느덧 붉은 낙엽이 어색하지 않은 계절이 왔다. 일년의 사분의 삼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구나. 올해도 역시나.
- 후암동에서 소월길 올라가는 계단. 군데 군데 계단이 있어 오르는 방법은 여러가지.
- 후암동 일대는 옛날 슬레이트 집들이 꽤 많아 예전 봉천 3동 살 때의 추억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쓰레기 분리수거가 아주 안 되는 지역이기도 하다...항상 느끼는 거지만...단속을 해도 아마 잘 이루어지지 못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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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근을 나가 후암동에서 소월길까지 돌아다녔다.

소월길은 내가 좋아하는 길이기는 하나... 경사가 심해 후암동에서 소월길에 이르는 가파른 길은 꽤나 운동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오랜만에 여길 걸어보니 기분이 좋았다.

뉴욕 느낌





- 타임스퀘어 부분의 정신없음.. 명동 거리와 비슷하긴 한데 도로가 좀 더 넓고 사람들이 좀 더 가지각색이라는 점만 틀리다. 뮤지컬은 아마 본다면 싸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할인해주겠다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 무역센터가 무너진 자리에는 새로운 프리덤 타워가 속속 올라가고 있었다. 짓는 모양새가 신도림역 디큐브 시티를 짓는 형태와 비슷해서 두 건물이 계속 비교됬다. 이 큰 건물을 짓는 게 엄청난 고용을 창출하겠지. 아마도.

- 기본적으로 "항구"도시라서 그런지 관광용 선박들이 즐비했다. 항구에는 사람들도 많았고.

- 뉴욕 월스트리트 노점상의 트랜드는 할랄 버거다. 이게 그리 맛있는지 아주 많은 가게들이 있었다.



보통 뉴욕만도 일주일여를 여행하는데 고작 삼일!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틀 반을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보는 나이아가라도 못 보고 자유의 여신상에도 올라갈 수 없었다.

숙소에 있던 중국 여학생 양양(앙양인지 양양인지 헷갈린다)은 워싱턴 디씨를 보고 뉴욕에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가 볼 것이라 얘기했는데, 난 이거 여행 일정이구 뭐고 없어 참 빈약하구나 싶었다.

하지만 지하철 일일 언리미티드 패스를 끊어 하루종일 맨하튼에서 브루쿨린으로 퀸스로 할렘으로 돌아다녔다.

어쩌면 폭포에 가면 뭘 할 것이며 자유의 여신상은 또 안 올라가면 어떻단 말이더냐...

단, 기억에 남는 건 경치가 아니라 -
마지막 날엔 공항가는 전철이 하필이면 그날 운행을 하지 않아 대체수단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바빳고 (결국 다음 비행기를 타야 했다), 오전 지하철 하릴없이 멀뚱멀뚱 천장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비집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부르짓는 얼굴을 여기서도 볼 수 있었다는 것, 저녁 지하철 지친 듯 앉아있는 다국적 시민들의 표정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공원과 낡긴 했어도 이용하기 편한 도서관이 그래도 이런 것이 뉴욕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자극하는 유인책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내가 학생이었다면 아마도 느끼는 것이 또 틀리겠지만...
어느덧 십이년차 직장인이다 보니 고단한 생활인들의 모습이 좀 더 눈에 많이 들어왔던 것 같다.

2010년 10월 14일 목요일

보스턴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짧은 시간동안 여행했던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뉴욕 이 세 도시는 그나마 미국에서 잘 살고 치안이 안정된 곳이었기에 이 세 도시만 보고 미국이 어떻다고 말하긴 힘든 것 같다.

단지 아침 버스를 타러 기다리던 중 졸린 눈꺼풀을 비비며 앉아있는 노동자들과 이른 새벽 골목을 청소하는 라틴계 청소부들을 보면(어찌 된 것이 건설일용직과 청소업무는 대부분 히스패닉들이 하는 듯 하다) 어디에건 먹고 사는 건 힘들구나... 이 정도를 느꼇던 것 같다.

그래도 정도를 따지자면 보스턴은 그래도 대도시에서 영어가 가장 잘 통하고(?) 대학가라서 젊은 사람들도 많고... 여러 모로 쾌적한 도시였던 걸로 기억한다.

작은 한강처럼 보이는 찰스 강이라는 곳을 다리가 이어주고 있는데 이 다리를 기점으로 한쪽은 도심지, 한쪽은 엠아이티나 하버드같은 대학들이 몰려있다.

그리고 낮이나 밤이나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다리를 뛰어다니고 있다.

어학연수든 교환학생이든... 이곳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한국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는데 잠시라도 이런 곳에서 생활할 수 있는 사람들은 운이 좋구나 싶었다.

구릉지대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내 앞자리 과장님은 뉴스에서 보니 곧 샌프란시스코에 지진이 날 거라며 여행갔을 때 지진이 나면 어떻게 피하느냐며 걱정을 해 주었다.

다행히 지진 따윈 없고 첫날만 좀 후줄근한 날씨였지만 연이은 이틀은 더 이상 쾌청하기 힘들 정도로 맑은 날씨였다.

1930년대인가 큰 지진이 났었고 80년대에도 지진이 났었다지만...
우리나라 산동네 저리 가랄 정도로 산을 깍아 만든 단독주택들이 즐비한 이 도시가 과연 지진이 나면 어떻게 대피를 하며 피할 공간은 제대로 만들어 놨는지 심히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저 높은 지대와 아기자기한 집들이 조화를 이루어 도시 전체에 생동감을 주고 있었다.
곳곳에 공원도 많고...
치안도 딱히 안 좋은 것 같진 않고.

돈만 많다면(?) 샌프란시스코는 참 살기 좋은 도시 같다.

성적 소수자들의 천국





벌써 여행을 다녀온지 이십여일째가 되어가는구나.
지금 기록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처음 기착지인 샌프란시스코부터 기억을 더듬어 내려가면...



문제의 나의 숙소는 차이나 타운 근처에 있었다.
그래서 새벽에 찾은 숙소인데도 바깥은 술먹은 사람, 싸우는 사람, 경찰차량이 몰려 난리도 아니었다.

여기에서 약간의 문제는 있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별거 아니었으며...정리하자면 내가 걍 이십 달러 손해 본 것. 근데 오히려 그것에 약간 연연했던 것도 하다.

첫날부터 새벽에 돌아다니면서 느낀 건 이곳이 그리 큰 도시는 아니라는 것. 경사가 아주 심한 곳이라는 것, 그리고 굳이 차이나 타운 아닌 곳에 가더라도 넘치는 중국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이란 것... 중국인들은 굳이 영어를 배울 필요도 못 느낄 것 같다.

히스패닉도 많긴 많다. 하지만 히스패닉들은 후에 가게 된 뉴욕 보스턴 ... 어디에나 다수였던 반면 샌프란시스코에는 히스패닉과 중국인이 서로 막상막하였던 것 같다.


새벽의 흐릿한 샌프란시스코를 걷게 된 후 오전 오후... 지나면서 느낀 또 하나, 아 여긴 정말 게이들의 천국이구나. 하는 것.

카스트로거리라는 길게 뻗은 비탈길은 게이들의 아지트와도 같다.

세계 곳곳의 게이들이 인종과 나이를 초월하여 서로에게 빠져드느라 정신없었다.

각자의 나라에서 외로웠고 멸시받았던 성적 소수자들은 적어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자신들이 마음 편하게 애정을 과시할 수 있어 행복할 것이다.

2010년 10월 8일 금요일

렉싱턴 애비뉴



비포 썬라이즈를 보고 유럽여행목록에서 비엔나를 추가시켰다는 사람들이 많듯
렉싱턴 이란 거리명을 보곤 렉싱턴의 유령이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 제목을 떠올린 건 우연이 아니다.

뉴욕 렉싱턴 애비뉴는 아주 평범한 거리라서 유령 따윈 나오지 않을 법한 거리이다.

왜 제목을 유령으로 지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

중간중간 큰 건물이 나오고 관광객들이 많이 몰린 거리가 있긴 하지만 특이할 정도는 아니다.




2010년 10월 2일 토요일

샌프란시스코 맑은 하늘.


샌프란시스코 일정의 마지막 날이었던 9월 20일. 맑고 화창한 날이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