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30일 토요일

어느 소설가의 초상

도서관에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포함된 박태원 중단편집을 빌려왔다.

박태원 채만식 이태준... 이러한 일제시대부터 해방초기 작가들 소설들은 예전 고등학교 때 어쩔 수 없이 교과서에 포함되어 의무적으로 읽었었다. 그 떈 별 느낌없었는데 나이들어 아무 의무감없이 읽어본 이들의 소설집은 너무 재미나고 이 당시 소설들이야말로 서사라는 소설의 원형을 잘 나타내 주는 것 아닌가 싶었다.

박태원 이란 작가는... 천변풍경 소설가 구보씨 일일 등 눈부신 작품생을 쏟아내던 작가인데... 남로당 (남로당 이란 이름이 참 생경하구나.. 한참 지리산 빨치산 남부군... 이런 작품들이 쏟아져나왔었는데...) 계열 문학 단체였던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에 취임한 걸 기점으로 전향성명서에 서명도 한 적 있었으나 한국전쟁시 월북하여 파란만장한 후반기의 인을 살아가게 된다.

피바람부는 숙청으로 창작금지 조처를 받기도 했으나 갑오농민전쟁이라는 필생의 역작을 집필하고 반신불수와 실명 등 질병으로 얼룩진 고단한 인생길을 마감한다.

이것이 대략적인 그의 인생이다.

갑오농민전쟁이 어떤 소설인지는 읽어보질 않아 모르겠고...
적어도 그가 아직 월북하기 전 소설들은 소시민에 대한 애정, 위트, 해학이 넘치는 소설들이 많은 듯 하다.

인상깊었던 구절들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중에서) 이 소설은 왠지 소설가 자신을 묘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찍이 그는 고독을 사랑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고독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심경의 바란 표현이 못 될 게다. 그는 결코 고독을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도리어 그는 그것을 기지없이 무서워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고독과 힘을 겨루어 결코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그런 때 구보는 차라리 고독에게 몸을 떠맡겨버리고 그리고 스스로 자기는 고독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꾸며왔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 길은 어둡고 중에서) 가난하고 피곤한 소녀 향이의 인생역투기. 그녀가 서울에서 마음의 행로를 따라 목포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기까지 총 열 세 개의 짧은 단락으로 구성된 게 인상적이다.

--- 과거 팔 년간의 온갖 쓰라린 일, 온갖 슬픈 일, 온갖 괴로운 일을, 이제 다시 생각 속에 되씹어보더라도 그것이 무슨 보람이 있으랴. 오직 그의 마음은 좀더 아프고 그의 앞길은 좀더 어두워질 것에 지나지 않지 않으냐.


(거리 중에서) 가난한 집의 생활을 이끌어나가도록 규정된 청년이 거리에서 느끼는 모순된 감정.
맨 마지막 격렬한 청년의 심리토로가 인상적이다.

=== 거리 위에서 나는 언제든 갈 곳을 몰라 한다. 내가 아무런 볼일도 갖는 일이 없이 그냥 찾아가 만나줄 벗이란 다섯 손가락에도 차지 못하였고 물론 같은 이를 매일같이 찾아보는 수는 없었다.

--- 내가 그에게 바로 지금 찾아갔던 것임을 일러주었을 때 그는 순간에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하고, 그의 눈물이 방울방울 내 손등에 떨어지는 것도 그는 꺠닫지 못하였다. 아무리 신경쇠약이라 하더라도 나의 심방이 그렇게까지 그에게 감격을 줄 것을 나는 결코 예기하고 있지 못하였으므로 한참이나 나는 오직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이나, 문득 내가 그를 만나보려 한 본래의 목적을 생각해내었을 때 나는 갑자기 그의 지나친 감격에 불쾌를 느꼈다. 만일 이 경우에 내가 돈 이야기와 같은 것을 꺼내기라도 한다면 그는 응당 나의 심방에 대하여 그렇게도 자기가 감동하였던 것을 뉘우칠 것이요 그래 그는 제 자신 불쾌하지 않으면 안 됨으로써 내게까지 그 우울을 나누어줄 것에 틀림없었고 설혹 뜻밖에도 내가 그에게 돈을 취하는 것에 성공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나는 바로 그의 약점을 이용하여 내 몸을 이롭게 하였다고 그러한 비난을 받아도 어쩌는 수 없는 노릇이라 그래 나는 좀처럼 냉정해지지 않고 그저 그대로 그동안의 자기가 얼마나 고독하였었던가를내게 호소하기에 열정인 그를, 그와는 훨씬 먼 거리에서 그에게 대하여 내 마음속에 일종 격렬한 증오조차 느끼며, 언제까지든 불쾌하게 또우울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성탄제 - 마치 파란 대문의 모태가 된 듯한 소설이다. 파란대문에선 주인집 여대생이 매춘을 함으로써 창녀와의 의사소통에 성공(?)하지만 이 소설에서 기생으로 살아가던 언니 영이는 아우 순이마저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에 대해 씁쓸함과 처량함이 베어난다는 게 차이점이다.

--- 영이는 생각난 듯이 곁에 드르누운 어머니와 또 아버지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물론 지금 건넌방에서 순이의 몸위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고 있을 게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놀라지 않고 또 슬퍼하지 않는다.


'이것이 인생이란 것이냐?'


갑자기 몸이 으스스 추웠다. 영이는 베개를 고쳐 베고 눈을 감았다. 어인 까닭도 없이 운동회 날

본 순이의 모양이 눈앞에 선하다. 이윽히 그것을 보고 있다 영이는 한숨을 쉬었다.


'너마저 집안 식구에게 자장면을 해다 주게 됐니? 너마저.....'


영이의 좀 여위 뺨위를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렇게 눈부신 작품을 쏟아내던 작가도 시대의 격랑 속에서 굴곡진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 굴곡이 그에게 어떤 작품을 남겼는지는 먼 훗날 통일교과서에 그의 월북 후 작품이 실리게라도 된다면 확연히 알 수 있으리라.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