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5일 월요일

나의 다짐

많은 잡념의 끝엔 결국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제력과 기다림이란 생각이 들면 좀 풀이 죽는다
허나 자제력과 기다림이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맞다.

노인연령상향 뉴스를 보니, 앞으로 직장다닐 시간도 십년하고 좀 더 있어야 하나 싶어 쓸쓸해졌다.
이런 기사 볼 때마다 정부에서 연금 수급연령을 올리려고 여론 조성에 박차를 가하는구나 싶다.

꼭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해서 만 60세부터 한 30년 줄기차게 받아야겠다.

2019년 2월 19일 화요일

1980년대

요즘 드는 생각인데, 1990년대 ~200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1980년대 전두환의 3S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영화애호가들이 처음부터 명작영화에 흥미를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이들은 매우 소수 엘리트층.  처음에는 분별없이 쏟아지는 성인비디오, 만화, 홍콩 무술영화를 보고 자라난 세대가 결국 언젠가는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보고 앙드레 바쟁의 평론을 보고 종국에는 영화감독의 길로 평론가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까.  타란티노도 처음은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 홍콩영화를 보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듯이 말이다. 
쓰레기같다고 무시받던 음란 비디오물과 프로스포츠의 범람이 차후 풍요로운 문화가 꽃필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었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가부 장관을 여자 전두환이라고 칭하는 건 과한 칭찬이다.
전두환은 적어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진 않았다.  집회 결사의 자유는 억압했지만  표현의 자유는 억압하지 않았으니 절반쯤은 괜찮았다고 봐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과 페미니스트라는 외피 위, 전체주의적 사고를 강요하는 여가부의 실질적 폐혜가 훨훨씬 더 크다.

그렇다고 그가 표현의 자유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고 그저 대학생들 시위같은 큰 덩어리의 시위만 아니라면 그럭저럭 자잘한 자유는 허용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군사정권이었지만 두발자유화 교복자유화 통금자유화가 줄줄이 발표되었고 영화 스포츠 산업도 많이 발전했다. 

자칭 민주정부에서 어떤 정부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강력한 표현의 자유 제한책이 인권의 얼굴을 하고 줄줄이 발표되고 있는 건 참 아이러니인데, 
잘한다고 쉴드치는 언론들이 아직 많기에 한국판 빅 브라더 건설은 예상보다 더 빨리, 큰 반발없이 조용히 완료될 듯 하다.

2019년 2월 17일 일요일

암수살인

살인자를 막상 잡고 보니 허세인지 무죄플랜인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예전에 저질렀던 다른 살인도 술술 불기 시작한다. 단, 자신에게 두둑한 영치금과 선물을 안겨주는 조건으로.
실제 주인공이었던 형사는 범인에게 영치금 따윈 안 줬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 속 형사가 집이 꽤 사는 집이고 아내가 죽은 뒤 부양가족이 없다는 설정은 왜 범인이 형사에게, 형사가 범인에게 빠져드는지 그럴싸한 논리를 제공해 준다.

영화 속 범인으로 나온 주지훈은 생각보단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보단 실패한 형사로 나왔던 주진모가 더 인상적이었다.  타짜에서 나왔던 바로 그 분위기만으로 무서웠던 그 사람이 전직형사로 나와 잠깐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연기한다.
이 배우의 이름이 동명이인 주진모인진 처음 알았다.  인터넷엔 아예 1958년 주진모, 1974년 주진모로 나눠 표기하더라.  사실, 길거리에서 영화 속 주지훈같은 사람을 보는 것보다 주진모를 보는 게 더 무서울 것 같다.  낮은 목소리.  뭔가 비밀이 있는 듯한 태도... 작은 키에 힘이 셀 것 같지 않은데도 분위기만으로 엄청나게 무서운 느낌을 자아낸다.

아무튼, 1958년생 주진모 씨는 앞으로도 영화에 꾸준히, 더 중요한 역할로 많이 나와주길 바란다. 

2월인데 추위는 가시지 않는다.  확실히 예전보다 추위에 더 취약해졌다.  지방층은 더 두꺼워지는데 추위에 대한 저항력은 더 낮아져 간다.

이 경우 의심해볼 수 있는 질병은?  단연 갑상선기능저하증이 될 것 같네...
나의 병력에 또 하나의 병명이 추가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2019년 2월 14일 목요일

이슬람혁명

나중에 역사가들이 어떻게 평가할진 모르겠으나. 현재까지 상황으로 보건대 현 촛불혁명은 이란 이슬람 혁명과 묘하게 닮았다.
극단적인 여성억압이 극단적인 여성우위 페미니즘 정책으로 발현된다는 점만 극적으로 다르고 반미 민족주의 세력이 장기지속적으로 한국의 세습지도층이 된다는 시나리오는 혁명세력과 그 자제들이 대를 이어 지도부를 형성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기층민중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혁명세력의 집권이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소의 촛불혁명세력의 과도한 폭정이 있어도 그게 잘 이슈화가 안 되고 전 국민의 패배감이 깊어지고 있으므로 앞으로 이들의 장기집권은 따 놓은 당상이다.
역사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진 않지만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긴 한다.

2019년 2월 7일 목요일

저출산

저출산이 대세인 건 맞지만 너무 빠른 시간 내 출산율 1을 가볍게 누른 걸 보니 여성부가 설치고 돌아다니니는 게 저출산의 큰 원인  같다.
나중에 내가 60대이상이 되면 워낙 노인들이 많아서, 워낙 혼자사는 노인들이 많아서 군중 속에서 덜 외로울 것 같다.  그것 하나는 다행이다.



2019년 2월 2일 토요일

결정적 순간

 안희정 사건을 그래프로 그려놓은 걸 보니 2017년 7월 ~9월 여름에 사건이 집중적으로 몰려있었고 2018년 2월 마지막 관계 이후 곧바로 뉴스룸에서 폭로가 이루어졌음을 알수 있었다.
이를 전지적 안희정 관점으로 생각해 보자면..
2017년 여름은 그에게 많은 회의감을 가져다준 시기였을 것이다. 치열한 경선 끝에 문이 비교적 쉽게 왕좌를 차지했지만 삐걱거리는 내각구성이나 무조건 대깨문을 외치는 인터넷 신도들을 보며 결코 맘이 편치 않았을 것 같다. 세상이 뭐같다고 느낄 무렵 그녀와 해외출장을 핑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마음의 안정을 얻었으나...아마 가을을 넘어서면서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24시간 수행비서를 여성으로 고용한 자신에게  좋지 않은 눈초리가 있음을 그제서야 깨닫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갑자기 내칠 순 없는 법.  승진을 이유로 그녀를 정책비서로 발령내고 이제 이건 나름 끝났다고 생각했지만..미투열풍을 맞아 나름 과거의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고자 그녀를 다시 만난 날 또다시 사건이 있었으니..그 때 제발로 갔건 반항을 했건 말건 비서 생각은 자신을 무시한 거란 생각이 분명해졌을 것이다.
처음 페이스북글이 자신 스스로 쳐 놓은 마지막 올가미였다면 2018년 2월말의 만남은 결정적순간이었던 것이다. 
만약  2월에 굳이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으리라.
이렇게 사람이 망가지는 데에는 몇 가지 결정적 장면이 있다. 
그렇다면 손사장의 경우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2년만에 렉카차 기사에게 한 전화가 결정적 패착으로 작용할 것 같다.

가끔 헤어진 여자에게 좋은 남자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지나치게 큰 남자.  자신이 속했던 전 조직 사람들을 너무 믿는 남자들을 본다.  최근 사회적으로 급전직하한 사람들의 특징은 이렇게 위기의 순간에서 자신을 무리해서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려 했거나 전 조직 사람들의 선의를 너무나도 믿는 경우였다.  
안희정의 경우도 그 때 그녀가 자신을 좋게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지나쳤던 것 아닐까.참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아마 일부파기환송이 되더라도 2년 정도는 감방에서 살 것 같다.  


2019년 2월 1일 금요일

감수성의 혁명

60년대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스타 김승옥처럼 21세기 감수성의 혁명을 이끌어 낸 이들은 판사들인가..
증거보다 우위에 서게 된 성인지 감수성운운을 보자니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간통죄가 없어진 대신 페미니즘이란 엄격한 잣대로 간통죄에 갈음하는 처벌 효과를 만들어내는 건가?

1심 때와 완전히 달라진 입장을 보니 앞으로 성 감수성을 중시하는 이 분위기가 상당히 오래 갈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여자인 나조차도 성 감수성이 뭔지 헷갈리는 게 문제네...왠지 승리자는 원고가 아닌 목소리 큰 여성단체의 몫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