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28일 토요일

이탈리아

하루에 900명 이상 사망한다면.. 과연 봉쇄조치가 무슨 도움이 될까 의문이네. 지금 봉쇄조치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저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줄이는 효과만 있을 뿐. 일상생활을 하면서 중증자를 빠르게 치료할 생각을 해야 함.
우한코로나 사태에 가장 잘 대응한 국가는 대만. 그런데 기존언론에선 한국의 방역이 훌륭하다고만 칭송하지 막상 대만은 잘 언급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대만은 중국 방해로 WHO에 가입조차 못한 나라.   WHO 바깥에 있는 나라가 실제론 방역에 가장 성공해 최소한의 피해만 내고 있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크다.   결국 국가연합인 EU건 국제기구인 WHO건 평소 하는 일 없는 국제적 적폐였단 얘기다.   이 사태 이후 민족주의가 대두할 또 하나의 이유이다.  WHO에서 팬더믹을 선언했을 땐 이미 사태가 엄청 커져 유럽 각지에선 사망자가 속출하던 상황.  WHO가 위치한 제네바마저 위험해지자 재빨리 팬더믹을 선언했단 얘기도 있는 걸 보면 앞으론 위기시 UN이건 UNESCO든 WHO든 이런 국제기구보단 국가별 자구책이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봉쇄를 선택하면  그때부터 역설적으로 아예 사망자가 큰 폭으로 느는 걸로 보인다.  그럼 왜 국가들은 너도 봉쇄를 택할까.  최소한 봉쇄는 격분한 시민들이 정부를 향해 쏟아내는 분노는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봉쇄가 계속되면 아예 생산능력을 상실하게 된더. 환자들은 치료하되 직장인들은 재택이든 격일제든 일을 하게 하는 게 사회안정에 좋다. 그란 의미에서 총리지지도가 상승했다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몇몇 나라들은 지지율 상승에 취해 국가기능을 거세시키는 무서운 도박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2020년 3월 26일 목요일

변희재 3

변희재는 이번에도 패배의 아이콘이 된 것 같다.
본인이 기를 쓰고 밝혀낸 사안에 대해 동료라 생각했던 그 연구소 채널은 본체만체 한다. 어쩌면 지금 본심을 안 게 다행일지도 모르지만.
재판에서 이긴다면 좀 보는 시선이 달라지려나.

진실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진실을 아는 걸 모든 이가 원하지도 않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각자의 진가가 드러난다

2020년 3월 20일 금요일

EU는 해체될 듯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우한폐렴이 끌날 무렵 EU는 자동해체될 듯.
유럽 사람들도 참 특이하다.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eu에 대해 어떤 분노도 떠트리지 않으니. 
내 생각에는 이 시점에 이탈리아 정도만 eu에서 내좇고 자신들은 그럭저럭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 듯.
이태리 정부라면 어차피 망할거 막 나가는 태도도 고려해 볼 만 하다

2020년 3월 12일 목요일

우한폐렴 속으로

https://youtu.be/wMMBHvX6Rvg

갑자기 일주일새 환자가 폭등하고 있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역 의사 인터뷰.
안타깝다. 상황이 좋아졌으면 좋으련만.

2020년 3월 7일 토요일

요양원

나이들어 요양보호사에게 내몸을 맡기고 있으면 처믐엔 분노감. 나중에는 체념이 들겠지. 말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언제까지 유효하려나.

무한폐렴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가장 큰 경우는 아마도 시설수용자인 것 같다. 군대 교도소 요양병원어 있는 사람들.   가장 위험지대에 있으면서 가장 험하게 취급받는 사람들.
아마 비시설 생활인이라면 좀 심한 감기처럼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생각한 건데...나중에 나이가 아주 많이 들어 그때까지 살아있는데 오랫동안(?) 죽지 않아 불가피하게 시설에 가야 할 땐 최대한 그 시기를 늦추는 게 필요할 것 같다.

2020년 3월 4일 수요일

옥중서신

옥중서신의 대표주자는 이탈리아의 위대한 곱추 안토니오 그람시.  예전 학생회관에서 그의 책 옥중수고를 읽어보려 빌렸지만 두꺼운데다 어렵기까지 해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가 처제에게 쓴 편지 중 쉬운 부분만을 편집해서 출판한 민음사 간 '감옥에서 쓴 편지'는 읽을 만 했다.   아마 그는 사상가가 되지 않았더라도 예술가로 훌륭한 인생을 살았을 터이다.

오늘 박근혜의 옥중서신은 그람시만큼 어렵거나 유려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특징- 쉽고 간결한 문체, 깔끔한 서체-은 감옥이 사람 영혼까지 가둘 순 없구나 하는 걸 깨닫게 해 줬다.

1997년 12월. 그녀가 미래연대(?)인가 하는 다소 평범한 이름의 정치연대를 만들며 현충원에서 그녀의 아버지의 동료임이 분명한 나이지긋한 어르신들을 양 옆에 대동하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세운 이 나라가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나왔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아. 이 사람은 자신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확신하는구나'싶어서 좀 신기했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이 국가의 구성윈이란건 인지하지만 국가의 주인 이란 생각은 좀 추상적으로 하는 반면 이 사람은 '아버지대부터 가꾼 내가 주인인 나라'라는 생각을 비교적 확실하게 하는 게 신기했다.
그후 이십이년이 흘러 몸은 감옥에 있지만 그녀의 그 때 그 생각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자신 부친이 세운 자신의 나라가 중국역병으로 신음하자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녀를 공주라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진짜 공주이기 때문에 자신 국가가 힘든 걸 못 보는 것이다.
정치적 통합의 메시지보다 위로의 메시지란 느낌이 더 크다.  황교안이 어쩌구 김문수긴 어쩌구 하는 건 다 지엽적 이야기일 뿐.
어쩌면 그녀의 이번 승부수는 길고 긴 투쟁의 서막같아 보인다.

2020년 3월 3일 화요일

마스크 2

http://m.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7775
가로세로연구소에서 지오영이란 회사가 약국에 마스크를 독점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그래서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나 하는 얘기가 있다 .  인터넷에서 조회해 보니 이런 기사가 뜨네. 
최근 몇년간 엄청나게 뜬 회사인 건 맞네.  참...잘도 헤쳐먹는다.  이제 남은 마스크를 다 쓰면 한 장에 삼천원 이상 가는 마스크를 써야 할까.

2020년 3월 1일 일요일

아포칼립스 Now

- 인류의 미래사, 칠드런 오브 맨, 풀의 죽음
아포칼립스를 다룬 세 가지 작품을 생각해 봤다. 모두 명작이지만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길 바랬던 건데... 결국 이렇게 일어나고야 마네.

10년 전쯤. "인류의 미래사"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일종의 메타 픽션이라고 봐야 할까. 열 살 손녀에게 할아버지가 20세기 말부터 인류가 겪어온 자취를 설명하는 형태. 요즘 왠지 이 책 생각이 많이 난다.
기사를 쓴 출판평론가는 공산주의-아나키즘의 도래를 인상적으로 본 모양인데, 사람마다 인상적으로 느낀 부분은 각기 다를 터.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건, 미국이 망하고(말 그대로 예전 찰스 헤스톤이 주연한 혹성탈출에서처럼 쫄딱 망한다) UN본부는 호주 멜버른으로 옮겨지고 미국은 메리 차베스라는 히스패닉 여자의 통치 아래 그냥 그런 좀 큰 국가로 남는 설정이었다.
특히 저자는 21세기 이후 전쟁과 환경오염의 피해를 남반부 - 호주와 뉴질랜드 - 가 그 피해에서 다소 자유로운 모습으로 그리고 있었는데... 이 책의 출판연도가 1989년이란 걸 생각해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칠드런오브맨에선 아이 없는 삶으로 돌입한 세상에서 기적적으로 아이를 임신한 흑인소녀를 구하기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을 그린다. 이건 뭐 휴머니즘 그런 걸로 생각해야 하는 건가. 그런데, 자신도 언젠가 죽고 새로운 생명이 딱 한 명 있다면, 그를 보호하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도 자기희생을 감수할 것 같기도 하다. 다 불행한 것보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는 게 낫지 않을까.

소설 풀의 죽음.
바이러스가. 모든 사람을 평등한 조건으로 만든다. 어쩌면 전쟁보다 더 큰 변화를 만들어준다. 중국들판에 충리 바이러스라는 게 퍼져서 풀들이 죽는다. 자연스럽게 시간차는 있겠지만 다른 동네로 번지고 영국에서 평온한 생을 살아가던 주인공도 곧 영국정부에서 인위적으로 사람들을 감축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걸, 친구인 정부관리를 통해 알게 되고 자식과 처, 이웃과 함꼐 길을 떠나는데..
이미 많은 동네가 황폐화되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들도 끼워달라고 말하지만 - 주인공의 계획은 영국 북부의 시골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 무작정 끼워줄 순 없고 끼워준 몇몇은 중간에 많이 죽는다.
소설의 끝자락에서 주인공은 결국 영국 북부로 이주를 마친다. 자녀와 아내도 안전하게. 친구도 안전하게... 하지만 그 속에서 아마도 그는 작은 독재자가 될 것이란 예측을 주며 소설은 끝난다.

- 사람들은 즐겁다.
휴일에는 여전히 남산공원에 사람들이 많다. 관광객들만 줄어들었지 일반인들의 생활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이태리처럼 치사율이 높지 않아서 이제 사람들이 좀 안심한 것 같기도 하고...
시설입소자나 고령자 아니면 걸려도 나을 거란 자신감(?)이 생겨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도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한쪽에선 즐겁게 지내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사실 꼭 우한폐렴 아니더라도 언제나 누군가는 죽어가고 누군가는 즐거워했다. 이것이 슬프지만 인생의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