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등장했던 작가들 중 참 괜찮은 작가들이 많았다
배수아처럼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김이소처럼 지금은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송경아처럼 꾸준히 괜찮은 작품을 발표하지만 크게 각광받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새로움의 충격이란 면에선 이들 중 송경아가 압도적이었던 듯.
언젠가 더 앞으로 나아가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 등장했던 작가들 중 참 괜찮은 작가들이 많았다
배수아처럼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김이소처럼 지금은 뭘 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송경아처럼 꾸준히 괜찮은 작품을 발표하지만 크게 각광받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새로움의 충격이란 면에선 이들 중 송경아가 압도적이었던 듯.
언젠가 더 앞으로 나아가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소설 마지막 부분이 괜찮았다. 예상보다 더.
p. 530. 나는 이제 나 자신이 되어야 할 것 같아. 네가 없는 곳에서. 너에게 기대지 않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걸어가야 할 것 같아. 아마 그럴 때가 온 것 같아. 그게 바로 지금이야. 지금 나가지 않으면 나는 이대로 계속 너세게만 기대서 살아갈 거야. 난 내가 되고 싶어. 3년동안의 잠이. 아니 6년동안 계속 미뤄 왔던 것을 나는 이제 갚아 나가야 해. 난 지금부터 내 시간을 되찾으려고 해.
p. 532. . . . 나는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딘가에서 지금도 살고 있을 그녀를 떠올린다.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되었다.
모두 혼자서 걸어간닺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몇 번이나 외롭지 않다고 해 본 들
또 다시 외로워질 것이 뻔하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으로 족하다
모든 외로움과 상처를 불태우고서
사람은 투명한 궤도를 나아간다
...
통상 글쓰기, 음악, 미술 등 많은 예술분야에 지원금이 주어지고 이게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의 큰 수입원이라는 건 이해가 간다. 그러나,
한 명이 각종 명목으로 지원금을 독식하는 건 좀 특이하게 보이긴 한다.
결국 두 가지 의문에만 답을 주면 될 듯 하다.
- 그처럼 한 명이 몇년 새 여러 종류의 지원금을 받은 경우가 있었나? 있었다면 몇 명이 그러한 중복혜택을 받았는가.
- 수년새 많은 지원금을 받았다면 그의 작품세계가 상당히 인정받는다고 봐야 할 터.
국제비엔날레 등에서 우수성을 인정받는 예술가에게 지원금이 집중된다면 나쁠 것도 없다.
그는 여태 창작활동하면서 국제적 규모의 해외전시회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었는지? 적어도 수년수년째 반복해서 지원금을 받는 경우라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예술가여야 가능할 거 같은데? 아니면 해외 창작레지던시에서 활동을 했다든지, 여러 명의 작가들의 합동전시회 뭐 그런 거라도 했었는지?
그가 인정받는 예술가라는 어떤 객관적 증거가 있는가? 이렇게 중복지원을 받을 정도라면 그 정도는 본인이 입증해야 할 거 같다.
예술지원급여와 사회복지급여가 다르겠지만,
수많은 혈세가 들어가는 사회복지급여의 경우에도 워낙 중복지원이 말이 많다 보니 요즘에는 나름 철저하게 검증해서 한 사람에게 몰빵지원을 삼간다.
장학금도 마찬가지.
A기관에서 장학금을 받는다면 그 학생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B기관 장학금까지 주진 않는다. 두 개나 주는 건 효율성이 떨어지고 형평성에도 맞지 않으니.
그런데 그 청년의 경우는 이러한 통상적 선례를 모두 뛰어넘었다
과연 그 정도 혈세를 투입해 줘야 할 정도로 우수한 예술적 재능을 지녔는지 궁금하다.
그냥 봐선 영 모르겠단 말이지.
셋째딸이 예쁘다는 건 나의 경우를 보건대 구라에 가깝다.
내 경우 셋 중 외모와 지력이 가장 딸리는데..오늘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게 다 타당한 이유가 있다.
첫째 아이를 둘 때가 부모 연령대가 가장 적으니 아무래도 부모의 건강상태는 가장 좋을 터.
둘째..셋째로 내려갈수록 더 늙은 유전자를 물려받으니 아무래도 아이의 건강상태와 뇌건강은 안 좋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뭐 이런 생각으로 나의 못난 외모를 또다시 합리화해본다
하긴 둘 다 너무 잘났으니 ..객관적 지표로 보나 외모로 보나 내가 가장 후지긴 하지.
앞으로 도움은 청하지 말아야 무시를 안 받겠지.
한강 사건 부모가 처음 제기했던 의문은 사실 머리부위의 상처.
그것 때문에 부검까지 했는데..아직도 그 머리 상처는 익사하면서 어딘가 휩쓸린 현상으로 추축하기만 할 뿐. 정확한 이유는 안 나온다
사실상 모든 음모론의 출발점은 그 상처 때문 아니던가.
또 하나.
부모는 소위 동석자 부모를 만나 제일 먼저 신발의 행방을 물어봤다고 했지.
근데 말 끝나기가 무섭게 버렸다는 답변이 들어왔고.
버린 사람도 처음 얘기와는 틀린 가족구성원이었지
휴대폰을 찾은(?) 이후 딴말하면 이제 다 고소 모드로 승기를 잡은 모양세지만
과연 신발은 왜 아직도 못 찾았을까. 그리고 왜 신발버린 사람을 왜 다른 가족구성원으로 얘기했을까.
왜 부모는 신발의 행방을 가장 먼저 물었을까
왜 부모는 머리상처가 가장 눈에 먼저 들어왔을까
이 두 가지. 머리 상처와 신발의 미스터리는 계속 남는다.
부모는 아마 뭔가 짚히는 게 분명 있을 것이다. 머리상처와 신발이 갖는 의미에 관해서.
사이가 각별하든 소원했든
부모와 자식 사이는 일반적인 관계는 아니지.
부모는 어럼풋이 사건의 전말을 직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동석자에게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고 달래도 보고 경찰을 믿는다며 내키지 않는 얘기도 해 보지만
동석자와 경찰은 요지부동이다
언론도 언제부터인가 유튜버의 해악에 대해서만 열을 올리지 처음 무엇이 문제인지는 함구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모순이 폭발한 사건이라고 하면 좀 오버일까. 근데 왠지 그렇게 보이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