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라는 영화 버닝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 를 원작으로 했다기에 주말에 읽어보았다.
괜찮은 소설이긴 한데 너무 짧고 특별한 사건이랄 게 없다. 31세 소설가, 비슷한 나이 또래 오렌지족(이렇게밖에 표현하기 어렵다), 21세 젊은 여자 이렇게 셋이 노닥이다가 오렌지족 남자가 자신의 취미를 정기적으로 헛간을 태우는 거라고 고백하고 여자는 사라진다는 내용이 전부. 헛간을 태운 게 발각되어 경찰이 추격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끼리 치정에 얽혀 싸우는 것도 아니다.
하루키 소설의 대부분이 이렇듯 별 특별한 내용보단 분위기로 밀고나간다지만 평면적이고 답답한 느낌을 영화에선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했다.
책 뒷면 작가 소개란을 보며 하루키와 이문열의 나이가 같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한쪽은 젊음의 작가 한쪽은 꼴통의 이미지.하루키의 젊음도 깊이 읽어보면 별로 다가가고 싶지 않은 젊음이다. 주변엔 죽음이 가까이 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경증의 정신질환후보생들도 많다. 다만 그의 초기 소설 속 퇴근 후 생선을 구워 맥주와 곁들여 마시는 상쾌한 생활. 원하는 상대와 척척 사귀고 경제적 빈곤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쿨한 젊음의 이미지는 그간 내가 익숙했던 빈곤한 청춘과 대척되는 지점에 서 있기에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이 부러울 수 밖에 없다. 그 쿨한 이미지가 비루한 젊음의 실체를 감추고 있다.
반대로 이문열의 꼴통 이미지도 다소 과장되어 있을 것이다. 실제 이문열을 만나본 사람들은 젠틀하고 따뜻한 작가란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대와의 불화로 정작 좋은 시절은 다 날려버린 불운의 작가. 동년배 하루키를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렇게 주말에는 원작소설을 읽었고 오늘 휴일엔 영화를 봤다. 얼마나 영화와 비슷한지 떠올리며. 주인공 종수는 20대 청년으로 여주인공 혜미와 같은 나이다. 이게 설정의 가장 큰 차이점. 오렌지족 남자(반포맨션에 사는 벤)는 소설 속 설정 그대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나오나 헛간이 아닌 한국 설정에 맞게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으로 변형되었다.
영화 속 혜미의 집은 꼭 나의 집을 그대로 찍었나 싶을 정도로 비슷했다. 사는 지역도, 지저분한 집구석도 단지 보일이같은 고양이가 없고 환영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정도? 아 이것만 해도 큰 차이지.
아무튼, 영화 속 종수가 30대 중산층 소설가에서 복잡한 가정사를 지닌 20대 일용직 노무자이자 소설가지망생으로 바뀌는 통에 이 영화는 유산자(벤)와 무산자(종수)의 대결처럼 그려진다. 부유한 삶을 꿈꾸는 혜미는 상품홍보모델일을 하며 판토마임을 배운다 아프리카로 여행을 간다 이것저것 하지만 끝내는 벤의 의해 최후를 맞았음을 넌지시 암시한다. 혜미와 종수를 잇는 끈은 파주 안에서도 어릴 적 혜미가 빠졌다는 우물로도 드러난다. 혜미의 가족들은 우물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릴 적손에 집을 나간 엄마는 우물을 기억한다. 우물이 불행한 사람들을 엮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인가...
영화의 소소한 재미 중 하나는 현 mbc사장인 최승호씨가 종수의 아버지로 나와 대사 한 마디 없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자존심은 강하지만 능력없는 영화 속 모습이 지금 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후반부는 소설에서 다루지 않은 헛간(비닐하우스)을 태운 후 상황이다. 헛간이 사라지는 걸 매일 체크하던 소설 속 남자처럼 종수 또한 집주변 비닐하우스를 매일 확인한다. 사라진 헛간이 없는 걸 기억해 내며 의문을 표하는 소설 속 남자처럼 종수는 벤에게 자신이 확인할 땐 태워진 비닐하우스가 없다며 따져물었다.
하지만 그대로 범인과 헤어지고 다시 12월을 맞는 소설 속 남자와는 달리 종수는 자신의 트럭으로 벤을 쫓고 그에게 책임을 묻는다.
난 이 부분이 약간은 억지로 보였다. 사실 어떤 스토리를 종결하는 가장 쉬운 해결책은 종종 살인같은 강력범죄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영화 역시 간단한 해결책으로 도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짧은 소설을 영화화할 때 이 정도의 극적 효과 없이 극을 마무리짓긴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다소 평범하긴 하나 그 짧은 소설 안에서도 하루키는 자신의 할 바를 다 했다. 주인공들이 모두 정지한 상태에서도 그 흔한 살인사건없이도 소설은 영화보다 더 위대하다는걸 보여준다. 그만큼 매력적이다.
헛간을 태우다 대 버닝의 승자로는, 헛간을 태우다의 손을 들어주겠다. 역시 아직까지는 텍스트가 영상을 이긴다. Text kills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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