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1일 토요일

조문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죽음과 장례식의 형식에 대해 구구절절 말이 많은 사람들이 있을까.
죽음의 의미에 대해선 다들 관심이 없다.  다만, 누가 죽고 조문을 가니 마니, 며칠 상을 치를 건지, 장례식 때 누가 무슨 옷을 입고 어떤 표정을 짓고 올 건지에 대해선 지대한 관심이 있다.
오죽 장례에 관심이 많았으면 예송논쟁이란 것도 있지 않던가
죽은 후 상복을 일년 입을지 삼년 입을지가 뭐 그리 중요하기에 이 때가 기회다 싶어 서로 싸우고 아주 난리가 났었지.
누가 장례의 민족 아니랄까봐 세월이 흘러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떄도 운동권 얘들은 김일성 조문을 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였단다.
당시 운동권 주역들이 지금 사회 주도층이 된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장례와 조문에 대해 형식 따지는 건 한민족 특유의 근성인가 싶다.
그 때도 누군가 그런 말을 했었다.
저렇게 몰래 조문할 정도로 김일성이 좋으면 그냥 북한으로 조문단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물론 돈은 학생회비 쓰지 말고 각자 돈으로.  
수뢰도, 성추행도 죽으면 다 묻힌다...이렇게 뭔가 논쟁적인 사람이 죽었을 떄 누가 조문을 가니 마니 신문에 자세히 다루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
각자 알아서 가든지 말든지.  그런데 또 이렇게 장례형식은 엄청 따지는 사람들이 그 사람이 왜 죽었을까 궁금해하는 건 예의에 없다며 엄청 싫어한다.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으니 갑자기 사람이 죽었으면 궁금한 게 당연한 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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