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리기 위해 여행을 가고
기억하기 위해 다시 회사를 가는 사이클이 다시 돌아왔다
다녀와서 이런저런 잡음이 있었지만 피곤함에 빨리 잊혀지기 바란다
신림동 인테리어업자 살인사건보고 떠오른 것들.
조원동, 신사동, 조원동, 서원동 등 이름을 바꾼 지 꽤 되었어도 신림 8동, 신림 4동 등 예전 동명이 꼭 옆에 나와주어야 '아, 이 동네가 거기였지.' 하고 떠올리게 된다.
너무 후줄근한 동네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다 개명했다던 개명 당시 일성이 떠오르는데 10여년이 지나도 옛날 그 이름을 떠올리지 않으면 새로운 동 이름이 익숙해지지 않으니 도대체 왜 동네 이름을 그렇게 바꿔놨을까 싶다.
새로운 이름이 곧 익숙해진 경우는 지금은 신림 7동으로 바뀐 난곡동 정도.
그 떄부터 신림7동이란 이름보단 난곡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해졌으니 이 경우는 이름을 바꾸는 게 자연스러웠으나
나머지는 그냥 그대로 두는 게 나았을 것 같다.
본동부터 13동까지였던 신림동쪽보단 11동까지 있었던 봉천동라인은 그나마 은천동, 성현동, 낙성대동 등 바뀐 이름이 입에 붙는데 - 아마 당시에도 신림동은 신림 2동과 9동의 음울한 고시촌이 중심을 이룬 산비탈 동네라는 인식이 너무나 강했었고, 봉천동은 신림동쪽보단 그나마 덜 외진 서민 주택가라는 느낌이 강해서 그럴 것이다.
비록 살인사건이 계기이긴 하지만 가게 장사에 있어 인테리어 비용이 너무 세단 얘기가 지금이라도 나오는 건 다행..
산재사고에 신경쓰는 절반만큼이라도 부당한 인테리어비용 척결결에 신경쓰면 좋을 텐데.
나중에 퇴직하면 절대 장사 따윈 시작할 돈도 없지만 하지 말아야 겠다는 뻔한 다짐을 다시 한 번 해 본다.
작은언니와 싸울 것이 염려되는 여행날 아침 든 생각.
퇴근길을 돌아돌아 길게 산책을 해 보니
빈 가게가 문 연 가게보다 많고
그나마 문연 가게는 철지난 의류를 파는 할머니가게, 하루에 손님 열 명도 없을 것 같은 개소주집을 개조한 염소탕집. 그리고 활기없는 거리풍경은 막 오십줄에 들어선 내 나이가 아직 젊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1998년 대우자동차 망조로 시작된 경제위기가
2026년 벽두 대기업 탈출로 다시 시작이 될까
아니. 이번은 시작이 아니라 끝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