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5일 월요일

미완의 계약서

많은 갈등과 고민 끝에 그러나,
그런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짧은 시간 내 결정하여
팔월의 일요일들 중 맨 첫번째 날. 잔금을 치르고 이사를 하는 걸루 결정했다.
잔금치르는 날 위임장이니 임대인 주민등록증 사본 도장 다 받아야 하니 정신이없을 건 자명하다...
그 정신없음 중에 하나라도 깨뜨려지지 않았으면.

난 이렇게 법적 계약의 유효성을 고민하는 동안
엄마와 언니는 그 집이 도대체 안전구역 내 있는지 관심을 가졌다.
엄마는 구체적으로 보일러가 제대로 작동되는지(물론 여름이라 잘 알 수는 없지만) 비가 새는 집인지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다며 한번 불시에 다시 집에 가보랜다. 그래서 추적추적 비내리는 저녁 홀로 다시 가 보니 세입자가 있었다. 이 아저씨와 몇마디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점은 -
어제 좀 더 곰곰히 생각할 걸...이런 일말의 후회는 있었지만...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학교에 가고 직장을 잡은 건 꼭 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랬다고 말할 수 있지만 -
서울에 엄마 아빠가 사시고 내 방이 있는데 나가 살기로 한 건
마흔이 되기 전 내린 크나큰 결정이다.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꼭 그래야 할 것 같은 일이어서 한 일...
여행이 좋아서 한 일이라면,
독립은 글쎄다... 이것도 어떤 측면에선 당위성이 강한 것 같긴 하다.

잔소리꾼 아빠와 힘들게 살아갈 엄마를 생각하니 걱정은 되지만...
어차피 나 자신이 기쁨을 주는 아리따운 딸내미는 아니었기에
다소 늦었지만 나가기로 한 결정엔 후회없다.

보드카 레인이 부르는 노래 가사처럼
당신과 함께 갈 수 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이제 안녕을 고해야 한다.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흘러갔으면...
갑자기 심장이 강하게 뛰고 흥분되서 일을 망치진 않았으면..
그리고 집에 남은 엄마가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주위 사람들의 그럼 그렇지 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 한다...

온갖 비웃음을 견디고 살아가야 하지만
고생 중에도 잠시 좋은 날은 있지 않던가.

나이든 여자의 떨림

엄마도 그리 행복하지 못 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열심히 그래도 좋은 사람 있음 결혼하는 게 낫지... 라는 말을 곧잘 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더니 -

어떤 남자와 결혼하는지는 부차 적인 문제이고

사회생활하면서 나이든 독신여자가 겪는 인생의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느껴봤기 때문 아닐까 한다.

지금이야 사무직원이니 - 사실 이 직종처럼 간당간당한 직업도 없다 -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다만,

엄마가 속한 직업사회 - 청소부, 아파트 경비원, 마트 종업원,,, 이런 아주머니들이 많이 종사하는 업종에서도 가끔 나이들어 혼자 사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다. 나이들어 자식 결혼시켰거나 남편과 사별이나 이혼해서 혼자사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결혼하지 않고그냥 쭉... 나처럼 사는 경우 말이다.

근데 그런 경우 그렇게 멸시하는 사람들도 많고 쉽게 보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집에 남자가 없다 라는 말 은 곧 쉬워보인다, 보호받을 사람 하나 없다. 어쩌면 이런 의미로도 통하는 것 같다. 무시받고 질시받고... 하지만 나이먹어 성질 더럽다는 얘길 들을 순 없으니니 묵묵히 수양하는 존자의 길을 갈 수밖에...

참... 독신이 아무리 많아졌 고 앞으로 많아지겠지만,

나이든 여자가 홀로 산다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이다.

나이들고 가난하고 몸도 고단 한 나는

어쩌면 비호감대상 트리풀 크라운이네 ㅋㅋㅋ

그래도 웃음으로 넘길 정도로 속이 없으니 어쩌면 다행이지만.


팔월 일일날 이사한다고 엄마한테 말하니

엄마가

"야, 너는 나이도 많은데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도 아닌 그런 집 전세로 들어가 사는 게 속상하지 않냐? 나같으면 속상해서 속에서 열불이 나겠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속상하기까지는 않았다. 다만 집수리에 자신이 없어 그것이 좀 걸릴 뿐. 그래서 "그닥 속상하진 않아"라고 했더니...

은근 생각이 없는 무뇌아란다 ... 그말에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


준비를 잘 해서 잘 살자...

지금 생각나는 건 어쩌면 이 오래된 다짐밖에.

키가 커야 뭐든 좋음


밥먹기 싫어하는 채환이에게 작은 이모로서 항상 하는 말...
키가 커야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넌지시 말해준다.
키가 작아 할 수 없는 직업은 있지만 - 일정 키에 도달해야 하는 스튜어디스, 경찰, 기타 등등... - 키가 커서 할 수 없는 직업은 아동극 배우 아니고선 거의 없다는... 그러니 부지런히 커야 한다는... 조카는 예전에는 별 신경 안쓰더니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모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 듯 하다.
요즘은 밥도 잘 먹고 어린이용 칼슘제도 꼬박꼬박 챙겨먹는다고 한다.

어제 저녁 독일과 아르헨티나가 경기하는 걸 보니 -
독일 선수들의 키가 압도적으로 커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발재간은 좋은데 영 힘을 쓰지 못하고 한골도 넣지 못하고 눈물을 훔쳐야 했다...
여러 원인은 있겠지만
네덜란드와 일본이 하는 걸 봐서도 느낀 건,
현 대축구에선 체격조건이 중요하다는 것.
백구십은 넘고 체력이 되면 훨씬 우위에 서게 되는 것 같다.

그 러고 보면 마라도나가 대단하긴 하다.
보통 여자키정도인데 어떻게 그렇게 뛰어다녔을까.
키가 작은데 운동을 잘하려면
남들의 배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가능할 것 같다.


2010년 6월 10일 목요일

아마도 타블로는 -

우리나라로 치면 평생교육원 같은 곳을 다녔던 것 같다.
크리에이티브 라이팅 과정이란 게 4년제 과정으로 있는가 헷갈렸는데 아마도 스텐포드대학 내 일반인을 위한 글쓰기 강좌에 등록해서 다니고... 그래서 누가 날 안다 누구와 친구였다 이런 말은 할 수 있어도 석사과정까지 마쳤다고 해도 논문번호도 없고 핵심 내용은 논외로 하고 자꾸 딴소리만 하는 듯.

일반인 과정을 다녔건 뭐건 떳떳하게 말함 될 것을... 자꾸 있는 말 없는 말을 갖다붙이니 어느 누구가 신뢰하겠나...
단순히 네티즌의 질투나 마녀사냥으로 몰아가는 건 자신들 팬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 세상 무서울 게 없는 듯 보인다.

어쩌면 학벌에 대해 지나치게 신뢰를 보내는 한국인들을 맘껏 조소하려는 맘 아닐까.

그건 그렇고,

신정아 사건 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던 언론이 왜 이 사건에는 관대할까?
자신들도 득될 거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커다란 권력이 그를 보호하고 있어서?
자신들 인터뷰에서의 내용을 번복한 것도 벌써 몇번째인데 - 이런 얘기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걸 보면, 돈주고 사보는 일간지보다 때로는 메트로같은 무료신문이 백번 낫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무튼, 씁쓸한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를 맺을지 궁금해진다.

2010년 5월 23일 일요일

빅뱅이론+ 여러가지 생각들.

빅뱅이론이 과학적으로 어떤 이론인지는 확실하게 모르겠으나,
적어도 미국 드라마 빅뱅이론은 너무나 재밌다.


내 생각에 셀든 같은 남자친구 있음 너무 재밌는 거 같은데... 아닌가?

1.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한다는데 하려면 빨리 했으면 좋겠다. 이왕 맞을 매 일찍 맞는 게 좋지. 아마도 지병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나같은 심정일걸?
빨랑 마쳤으면...

2.
어찌되었건 구월 추석을 최대한 이용하여 여행계획을 짰다.
휴가는 삼일 반만 내면 되는 것이니 큰 눈치는 없겠지?
혹시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시기는 특별히 일이 많은 시기가 아닌데.. 어쩌다 재수가 없을려면 일이 핵폭탄급으로 떨거지면 대략 난감인데...
어쨌든 현재로서 정해진 건, 비행기 표 뿐.

샌프란시스코 왕복비행기 달랑 한장.
그 순간만큼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3.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 그만큼 부모의 고통이 크다는 얘긴데...
세상엔 정말 여러 사람이 있기에 두 번이나 자식을 가슴에 묻었으면서 이해못할 행동을 하는 분도 있다. 그런데 내 주위에서 그런 경우를 실제 보니 좀 난감하긴 하다.
하 긴... 자식 사망 보상금을 재혼준비금으로 쓰는 경우도 봤으니.. 뭐 뭐라 할 얘긴 없다만... 그래도 사람이 죽는다는 거, 그걸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순 없다.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던 간에...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 되어버리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게 인생이니까.

태어나 일정부분의 소비로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수많은 이산화탄소를 뿜어낸 후 그 소비기능을 상실하는 것으로써 종말을 맞는다는 것에서 사람들의 생은 어쩌면 모두 비슷비슷하다.

2010년 4월 19일 월요일

한계상황

오후 출장을 나갔다가 돌아왔다. 참...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였지.

회상

어린 시절에 크나큰 학대를 당한 것도 아니고 부모가 이혼한 소위 결손가정에서 자란 것도 아니다. 단지 좀 가난한 집에서, 아버지가 집에서 시간을 때워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그저 그런 청소년이었었는데... 나의 문제점들을 생각해 보면 집에 대한 강박관념이 의외로 크다는 걸 느낀다.

객관적으로 볼 땐 큰 문제가 아닌지도 모르지. 그러나 모든 것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폭포수처럼 다가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