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0일 금요일

봄이 되면 슬퍼진다

십팔년 전 봄, 엄마가 희명병원에 사고로 누워있었고 388버스를 타고 병원에 이틀 걸러 가곤 했다.  어느 날 창밖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대로변에 아무렇게나 피어있었는데 장기 입원 환자의 고충 - 통증, 무료함, 그리고 .. 다가왔던 비만... - 을 매일 바라보는 게 가슴아파서인지 저 개나리도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팔년이 지난 오늘,  회사 직원에게 허튼 소리를 듣고 또 그걸 참으려 하니 종류는 다르지만 봄은 원래 이렇게 서글픈 계절인가 싶다.
투실투실한 육체도 봄을 견디지 못해 건선과 알레르기 비염이 왔다 간다.  
장기재직하고 있지만 승진과는 점점 멀어져갔던 지난 세월에 직원들의 질시가 겹치면 하루종일 심란하다.
그 어색함을 감싸기 위해 섣부른 말을 하려 들지 말자.
추함을 감추려 하는 말은 허튼 소리 뿐이므로.

2015년 1월 5일 월요일

겉으론 다 똑같은 세상 사람들.

여행 다니다 보면, 적어도 겉으로 사는 삶은 유럽, 중동, 아시아, 아메리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들 스마트폰으로 물건구입과 길찾기, 자기 홍보를 톡톡히 해 내고 저녁 시간에는  쇼핑몰에서의 영화관람, 친구 만나기, 방황 등으로 시간을 소진하는 듯 보인다.

물론, 도시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곳에서의 이야기이다.

다들 간신히 살지만 H&M 이나 유니클로 등 패스트 패션으로 나름 멋을 내고 싸구려 생활용품샵에서 힌트를 얻어 인테리어를 하기에 겉으로 봐서 꾀죄죄하고 볼품없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겉만 봐선 가난한 사람을 찾기 힘든 세상.
하지만, 원하는 걸 제 때 못 얻고 보호받을 수 없는 이들은 점점 더 늘어간다.

새해가 밝다

2000년 이후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지만 허무하고 대책없이, 영양가없이 흘러간다.
올해로 학교에 다닌 시간보다 직장에 다닌 시간이 더 길어지게 되었다.

현상유지에만 급급했던 나의 십육년.
다른 걸 시도해 본 적은 딱 두 번.
한 번은 소극적으로,
한 번은 적극적으로.
결과는 모두 실패.

실패할 만한 일을 했으니 준비부족으로 예정된 패배의 시간을 견뎌냈다.

2015년의 실천할 만한 계획으로는 -

소설 써서 응모하기.
블로그에 전보단 자주 들어와 보기.
(관중없는 경기도 선수는 더 잘할 수 있다)
과자와 라면을 줄이고 신선식품 위주의 식생활을 이행하자.
결혼, 연애, 인간관계 이런 대인관계에
초연해지자
(초연해지지 않으면 어쩔 건가)

이 정도면 크게 부담갖지 않을 목표이다.
지금 당장의 기대로는,
더 이상 얼굴 버짐이 피지 않는 것이다.


2014년 11월 13일 목요일

ikea

출근하다 보니 사당역 플랫폼에 바로 어제까지 백화점 광고가 붙어 있던 공간에 조잡한 색상으로 아이들 플라스틱 식탁 이만 구천원. 의자 만 구천원... 이런 광고가 빼곡하게 붙어있었다.  처음엔 토이로저스가 재오픈하나 싶었는데 오른쪽에 이케아 라고 큼지막하게 써있는 걸 보니 드디어 매장 공사를 다 끝냈나 보다.


이천 일년 가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이케아 가구 이십프로 세일을 한 적 있었다.
아마 위탁판매는 그간에도 꾸준히 이루어졌던 것 같다.  이미 많은 블로그를 통해 이케아 예찬은 많이 봐왔었기에 당연히 조립을 해야 한다던가, 상품이 나무통과 나사와 못 형태로 온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단순한 디자인 좋은 품질 등에 혹해서 화면상으론 꽤 괜찮았던 탁상을 삼만원 좀 넘는 가격에 샀는데, 이게 조립강도가 "중"으로 씌여져 있었다.  
그 떄 세일하던 상품 대부분 조립강도 "하" 는 없었고 침대는 "상" 이었고 의자도 대부분 "중" 이상이었다.
가구조립은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국기함 만들기를 제외하곤 뭔가 만들어본 역사가 거의 없기에 이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감이 안 잡혔다.
보통 성인 남자가 조립하는 데 세 시간 걸린다고 써 있었다..그럼 난 네 시간은 잡아야겟네.
삼사일쯤 지나 토요일 오전 배달 아저씨가 나무 판때기를 들고 집에 왔는데 배송비는 사천원.  요리조리 만들다 보니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못 종류도 여러 가지.  나사 종류도 네 가지쯤 되었는데 한창 만들다 보니 나사와 못 네 개 정도가 부족해졌다... 전체갯수는 맞는 것 같았는데, 적당한 위치에 맞는 못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말에 전화를 거니 당연히 '지금은 근무시간이 아니니 어쩌구..." 메시지가 나와 부득이하게 완성되지 못한 책상을 한켠에 치워두고 주말을 보낸 후 월요일날 다시 전화하니,
못이나 나사가 부족한 건 자신들의 사무실로 오면 줄 수 있단다.  그런데 사무실이 무려 경기도 광주...
그래서 경기도 광주를 아직까지 못 가고 대충 쓰다가 결국 작년 이맘때쯤 자체붕괴로 책상은 이년간의 수명을 다했다.

이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사업을 펼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생각에 우리나라의 이케아에 대한 이미지는 좀 부풀려져 있단 느낌이다.
하지만, 세계 각지 이케아 매장 내 스파게티와 피자는 먹어줄 만 했던 기억으로 보건대,
우리나라 매장에서도 음식을 싸게만 판다면, 이케아 레스토랑은 가구매장보다 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듯 하다.
복지국가 스웨덴이란 이미지에 북유럽 디자인에 대한 호감이 큰 영향을 미치는 듯.
하기야 대부분의 소비는 이미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던가... H&M 도 그렇고 이케아도 그렇고 장사 참 잘 한다.

2014년 9월 6일 토요일

건강검진

가장 늦게 건강검진을 하는 이유로 다소 긴장되었지만,
내 생각에 혈압이 좀 높은 걸 빼면 큰 질병은 없는 것 같다.
하긴, 혈압이 높은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게 더 문제겠지만...

오랜만에 아침을 먹지 않으니 몸에 힘이 빠졌다.
그래서 더 높게 나왔을지도 모르지.
내일은 엄마에게 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이것만은 제대로 하자..

2014년 8월 21일 목요일

파란 대문

나이가 들고 점차 알레르기성 체질이 되다 보니
뭔가 잘못 먹었을 떄 피부에 붉은 발진이 확 일어난다.
지난번 피부과에 갔을 때, 그럴 때 바르라고 의사가 '리도맥스'라는 경증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해 주었다.
효과가 즉각 나타나다가 이젠 그것도 가물가물... 좀 경증일 땐 버츠비 레스큐를 바르면 좀 완화되는 경향이 있길래 어젯밤, 가려움에 두 개를 병용해서 발랐는데.. 아침에 가려움에 새벽 네 시에 깼다.
아무래도 저녁에 그린마테차 한 병을 복용하고, 옥수수스낵을 같이 먹은 게 탈이 난 것 같다.  마테차를 적당히 먹었어야 하는데, 생수도 아닌데 생수마냥 먹었으니 탈이 나는 건 당연하다... 해조류ㅡ차-치킨과 돼지고기... 이 세 종류는 피해야 한다. 이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 증상에 반항하는 듯 세 가지를 모조리 먹을 때가 있으니.. 이건 뭐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네...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는 나의 육체에 관심을 기울이자.  관심직원에 이은 관심중년이 되지 않도록.

어쨌든, 새벽에 일어나 가렵다고 긁어대다 뭔가 관심을 둘 만한 것을 보면서 가려움증을 잊어보자 싶어, 컴퓨터를 켜고  김기덕 감독의 '파란 대문'을 다시 보았다.

지금은 자취를 감춘 이지은과 이혜은의 sisterhood를 다룬 영화.

바닷가 파란 대문 여관에는 - 포항이다 - 에는 여대생 딸,부모, 한창 성적 호기심이 왕섣한 동생, 어릴 적부터 함께 살지만, 이 여관의 영업(매춘)을 도맡아 왔단 이유로 대학생 딸의 괄시의 대상이 되는 '진아'가 함께 산다.

사실, 진아는 이 집 남자들 - 아버지와 아들 - 의 매춘 대상이 되기도 하고 , 쉬운 여자라는 인식 탓에 나쁜 기둥서방의 학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여러가지 과정을 거쳐.. 결국 둘은 극적으로 화해하게 되고, 그 화해의 표시는? 몸이 아픈 진아를 대신한 딸의 대리매춘으로 이어진다...

김기덕 감독다운 영화로 결말이 충격적이긴 하지만, 그의 영화에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결말이기도 하다.

1998년도 영화인데, 이 때만 해도 영화는 다소 순진한 구석이 있기도 하다.

조연으로 나오는 여관손님들의 어설픈 연기, 건너뛴 전개 등... 그러나, 색감은 여전히 좋고 이지은은 그녀의 TV연기보다 진일보된 가장 역할에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준다.
김기덕 감독의 명작은 수취인불명, 그 다음은 악어, 아마 이 영화는 네 번째쯤 자리잡은 영화인 것 같다.

적어도 뫼비우스보단 나은 영화이다..

이렇게 영화를 보고 난 후 잔향에 잠기다보니 어느덧 출근시간.

이 가려움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영화는 좋았지만, 다신 가려움에 자다 깨서 영화를 봐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기 바랄 뿐이다.

2014년 8월 8일 금요일

난중 일기

영화 명량을 보고 난중일기를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는 아직 청계천이 허물어지기 전, 한자 반 어색한 한글 반 난중일기 문고판이 있다.  먼지쌓인 책을 읽어보면서 느낀 점이 두어가지 있다.

- 난중일기 이전에도 일기를 꾸준히 썼을 것이다.  난리중에도 글을 쓴 걸 보면, 난리 전에도 꾸준히 일기를 썼을 성격의 소유자라는 걸 알 수 있다.  난전일기는 어디에 있을까.  존재하기는 할까?
- 일기 중, 가장 많이 나온 표현은 날씨 이야기 말곤 "오늘은 나라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아니하였다"는 표현이다.  조선시대에는 제사가 큰일이었음에 분명하다.  개인의 삶에도, 나라 일에도 제사 때문에 하고 못하는 게 결정되고 산 사람 일보다 제삿일에 더 힘쓴 경우도 많았나 보다.
- 일주일 개념이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일하고 쉬는 기준을 만들었을까.  그러고 보니 어쩌면 제삿날이 휴일의 역할도 했으리라.  시간의 기준이 다르니 사는 방식도 달랐을 것이다.
술마시고 개가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공무에 사적인 일을 끼워놓는다는 것.  그런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일기장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진기한 보물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