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이 이제 우리 시대가 열렸다는 선전포고였다면 강철비는 우리민족끼리 잘 살아볼 테니 딴나라는 꺼지라식의 새정부 통일정책홍보영화같다.
내부자들에서 용기없는 대선후보로 나왔더 이경영은 이영화에서 새정부를 상징하는 레토릭과 풍모로 이전정부가 반통일세력이었다는 선전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그나마 긍정적인 건 정우성 연기가 꽤 나아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18년 7월 2일 월요일
뇌출혈은 흔한 병
철모르는 어떤 기자가 며칠 휴식중이던 이를 두고 뇌출혈이라고 글쓴 걸 두고 오늘 저녁뉴스마다 가짜뉴스색출을 다짐하는 방송에 여념이 없었다.
색녀이자 악녀로 이미 확정짓고 방송했던 전직 대통령에 비해 가짜뉴스에 이토록 예민하게 구는 건 어쩌면 씁쓸하지만 나쁜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뉴스를 보면서 다소 의아했던 건,
아나운서와 기자가 뇌출혈이 아주 크고 유별난 병처럼 말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뇌출혈은 평생 식물인간으로 살 수 있을 정도로 리스크가 큰 병이지만, 빨리 발견해서 병원으로 옮기면 휴유증없이 조심하는 것만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증상이기도 하다.
즉, 이 병 발생시 "얼마나 빨리 병원으로 옮기느냐"가 환자의 남은 생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주변에 항상 사람이 있어 곧바로 병원으로 옮긴다면 큰 장애없이 조심하면서 살아갈 확률이 크고 그것이 가장 좋겠지만, 우리가 인간극장이나 병원24에서 보는 환자들 대부분은 쓰러진 지 한참 되어 발견한 경우이고 따라서 예후가 아주 나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사람들의 경우 주변에 항상 누군가가 따라붙는 경우가 상당하다. 따라서, 이들은 뇌출혈로 쓰러진다 한들 부리나케 병원으로 옮겨질 것이고 병원에서 적절히 처치할 것이기에 이들이 한번 쓰러져서 평생을 불행하게 살 경우는 희박하다 할 것이다...
병은 모름지기 무서워해야 하지만,
무서움이 지나쳐 누군가 언급하는 것만으로 히스테리를 일으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각종 언론사에선 항상 현 정부를 상당히 위해주고 정부 입장에서 많은 보도를 해 준다.
박근혜 정부 때와는 천지차이이다.
왜 그럴까.
아마 현 정부 탄생에 언론들이 지대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우리 정부"란 의식이 강할 것이다. 즉, 박근혜 정부는 고아원에 살아가는 아이 취급을 받았다면, "우리 정부"는 예쁘게 가꿔가야 할 내새끼로 여기는 것이다.
박근혜씨와 그와 함께 한 공직자들이 이처럼 큰 불행을 감내해야 할 정도로 중죄를 저질렀는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만으로 베충이로 낙인찍히기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오늘의 결론은
뇌출혈, 뇌졸증은 비교적 흔한 병이며 병원으로 빨리 옮기기만 하면 큰 장애없이 남은 생을 잘 살아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을 볼 때 뇌출혈은 없었어도 엄청 피곤한 증상은 갑상선기능항진증일 가능성도 있다.
갑상선이 안 좋아서 얼굴이 부어보인다가 설득력있을 듯.
색녀이자 악녀로 이미 확정짓고 방송했던 전직 대통령에 비해 가짜뉴스에 이토록 예민하게 구는 건 어쩌면 씁쓸하지만 나쁜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뉴스를 보면서 다소 의아했던 건,
아나운서와 기자가 뇌출혈이 아주 크고 유별난 병처럼 말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뇌출혈은 평생 식물인간으로 살 수 있을 정도로 리스크가 큰 병이지만, 빨리 발견해서 병원으로 옮기면 휴유증없이 조심하는 것만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증상이기도 하다.
즉, 이 병 발생시 "얼마나 빨리 병원으로 옮기느냐"가 환자의 남은 생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주변에 항상 사람이 있어 곧바로 병원으로 옮긴다면 큰 장애없이 조심하면서 살아갈 확률이 크고 그것이 가장 좋겠지만, 우리가 인간극장이나 병원24에서 보는 환자들 대부분은 쓰러진 지 한참 되어 발견한 경우이고 따라서 예후가 아주 나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사람들의 경우 주변에 항상 누군가가 따라붙는 경우가 상당하다. 따라서, 이들은 뇌출혈로 쓰러진다 한들 부리나케 병원으로 옮겨질 것이고 병원에서 적절히 처치할 것이기에 이들이 한번 쓰러져서 평생을 불행하게 살 경우는 희박하다 할 것이다...
병은 모름지기 무서워해야 하지만,
무서움이 지나쳐 누군가 언급하는 것만으로 히스테리를 일으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각종 언론사에선 항상 현 정부를 상당히 위해주고 정부 입장에서 많은 보도를 해 준다.
박근혜 정부 때와는 천지차이이다.
왜 그럴까.
아마 현 정부 탄생에 언론들이 지대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우리 정부"란 의식이 강할 것이다. 즉, 박근혜 정부는 고아원에 살아가는 아이 취급을 받았다면, "우리 정부"는 예쁘게 가꿔가야 할 내새끼로 여기는 것이다.
박근혜씨와 그와 함께 한 공직자들이 이처럼 큰 불행을 감내해야 할 정도로 중죄를 저질렀는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만으로 베충이로 낙인찍히기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오늘의 결론은
뇌출혈, 뇌졸증은 비교적 흔한 병이며 병원으로 빨리 옮기기만 하면 큰 장애없이 남은 생을 잘 살아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을 볼 때 뇌출혈은 없었어도 엄청 피곤한 증상은 갑상선기능항진증일 가능성도 있다.
갑상선이 안 좋아서 얼굴이 부어보인다가 설득력있을 듯.
2018년 7월 1일 일요일
일본 곤충기
마치 곤충처럼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한 여성의 삶을 1918년부터 1961년까지 그리고 있다.
'도메'라 불리는 여성은 오직 살기 위해 시골 지주댁 하녀, 공장노동자, 창녀, 마담에 이르기까지 온갖 일을 하면서 꿋꿋이 딸과 아버지를 부양하지만 아버지는 사망하고 딸은 어머니처럼 미혼모가 되는 설정으로 영화를 끝맺는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일본의 1950년대가 한국전쟁과 얼마나 큰 영향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마도 그 때 돈을 번 일본인들이 많을 것 같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상당수국이 일본에 베이스캠프를 차려놓고 몇년간 전쟁을 했으니 경기가 안 좋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것이다.
돈없는 젊은 여자들은 미군을 통해, 욕심있는 젊은 남녀들은 전시군수물자생산을 통해, 돈을 벌었고 그게 60년대와 70년대로 이어지는 경제호황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한국인(조선인 이라고 지칭함)에 대한 약간은 동정어린 시선도 발견할 수 있는데, 아마 지금 일본에서 한국을 위해주는 시각은 1945년 해방 이전 식민지배에 대한 죄책감이라기보다는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인한 호황을 몸소 경험한 세대들의 영향이리라.
자신들의 호황이 남의 나라 동존학살의 기억을 통한 이득임을 알기에 한국에 대해 진정 흥미를 가지고 진지한 시선을 갖고 있지, 식민지배시대 위안부니 근로정신대니 하는 걸 생각하면서 한국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진 않을 것이다. 일본인들에겐 원전과 패전의 기억이 강렬하기에 남의 불행을 곰씹어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거니와 1945년 이전의 기억을 간직한 세대들은 이미 많이 사라졌다.
40대 초반으로 주인공의 인생여정은 일단 끝맺었지만 그녀에겐 수많은 세월이 남아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공부도 싫어하고 엄마와 같은 운명의 미혼모가 될 터이지만 그녀의 딸은 토메보다 훨씬 잘 살 것 같다.
나중에 딸내미 인생도 들여다보고 싶었을 만큼 흥미로웠던 영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영화에서 여자들은 씩씩하고 육덕지다.
'도메'라 불리는 여성은 오직 살기 위해 시골 지주댁 하녀, 공장노동자, 창녀, 마담에 이르기까지 온갖 일을 하면서 꿋꿋이 딸과 아버지를 부양하지만 아버지는 사망하고 딸은 어머니처럼 미혼모가 되는 설정으로 영화를 끝맺는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일본의 1950년대가 한국전쟁과 얼마나 큰 영향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마도 그 때 돈을 번 일본인들이 많을 것 같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상당수국이 일본에 베이스캠프를 차려놓고 몇년간 전쟁을 했으니 경기가 안 좋았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것이다.
돈없는 젊은 여자들은 미군을 통해, 욕심있는 젊은 남녀들은 전시군수물자생산을 통해, 돈을 벌었고 그게 60년대와 70년대로 이어지는 경제호황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한국인(조선인 이라고 지칭함)에 대한 약간은 동정어린 시선도 발견할 수 있는데, 아마 지금 일본에서 한국을 위해주는 시각은 1945년 해방 이전 식민지배에 대한 죄책감이라기보다는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인한 호황을 몸소 경험한 세대들의 영향이리라.
자신들의 호황이 남의 나라 동존학살의 기억을 통한 이득임을 알기에 한국에 대해 진정 흥미를 가지고 진지한 시선을 갖고 있지, 식민지배시대 위안부니 근로정신대니 하는 걸 생각하면서 한국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진 않을 것이다. 일본인들에겐 원전과 패전의 기억이 강렬하기에 남의 불행을 곰씹어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거니와 1945년 이전의 기억을 간직한 세대들은 이미 많이 사라졌다.
40대 초반으로 주인공의 인생여정은 일단 끝맺었지만 그녀에겐 수많은 세월이 남아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공부도 싫어하고 엄마와 같은 운명의 미혼모가 될 터이지만 그녀의 딸은 토메보다 훨씬 잘 살 것 같다.
나중에 딸내미 인생도 들여다보고 싶었을 만큼 흥미로웠던 영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영화에서 여자들은 씩씩하고 육덕지다.
2018년 6월 30일 토요일
아르헨티나
메사가 트로피 들어올리는 걸 보고 싶었지만 16강에서 광탈하는 걸 보고 있노라니 안타까웠다. 하지만 세대교체를 하지 않고 좋았던 시절의 멤버들을 그대로 이용하는 아르헨티나가 신인들을 수혈한 프랑스에게 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세대교체를 하지 못한 이탈리아가 유럽예선에서 일치감치 탈락했듯 아르헨티나도 본선 초반에 짐쌀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당연한 것이다.
변하지 않는 건 퇴보한다. 그냥 그 자리에 가만 있는 게 아니라 아예 밀려나는 것이다.
사람도 사물도 그러하다.
뭔가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퇴보하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들이 세상엔 너무나 많다.
스페인도 탈락하고 독일은 이미 16강 진출도 안 됐고 미국처럼 큰 손은 아예 나오지도 못했으니... 러시아월드컵은 흥행 면에선 실패한 월드컵이 될 것 같다.
세대교체를 하지 못한 이탈리아가 유럽예선에서 일치감치 탈락했듯 아르헨티나도 본선 초반에 짐쌀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당연한 것이다.
변하지 않는 건 퇴보한다. 그냥 그 자리에 가만 있는 게 아니라 아예 밀려나는 것이다.
사람도 사물도 그러하다.
뭔가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퇴보하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들이 세상엔 너무나 많다.
스페인도 탈락하고 독일은 이미 16강 진출도 안 됐고 미국처럼 큰 손은 아예 나오지도 못했으니... 러시아월드컵은 흥행 면에선 실패한 월드컵이 될 것 같다.
2018년 6월 29일 금요일
갇힌 자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기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군대의 가장 큰 특성인 "단체생활"에 있는 것 같다.
단체생활을 하지 않는 공익근무요원이나 일부 의경의 경쟁률이 큰 걸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만약 대체복무형태가 집합이 아닌 자가출퇴근 형태로 결정난다면 그 업무난이도가 높던 높지 않던 기존 현역 젊은이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고아원, 군대, 구치소, 병원까지...
의도치 않게 집단생활을 하는 기회를 인생에서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인생은 성공적이라 할 만 하다.
2018년 6월 27일 수요일
양심을 방패삼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합헌판결이 나면 그 충격파는 실제로 엄청날 듯 한데 이번에는 왠지 인정해줄 것 같다.
또한, 그간 양심에 그르쳐서(?) 군대에 간 세월을 보상(배상)해 달라는 손해배상청구도 불을 뿜을 듯 하다.
내 양심에 따른다면 군대에 가기 싫었으나, 국가가 양심에 반해 군대가길 강요했으니 이를 배상해 달라는 소송이 종교에 상관없이 봇물을 이룰 듯.
생각해 보면, 이십여년 전 군가산점 위헌판결은 이미 이런 현실이 도래하기 전 일종의 촉매 역할을 했었던 것 같다.
전쟁이 난다 쳐도 그 누구도 참전 명령 따윈 할 수 없을 것이다.
비상상황이라 해도 "난 양심에 따라 참전할 수 없다"고 하면 그 누가 참전을 강요하겠는가. 오직 직업군인들만을 참전시킬 수 있을 것이고 설령 직업군인이라 쳐도 그 사이에 개종 등을 통해 본인이 생각하는 양심에 따라 참전할 수 없다 하면 강제할 법적 권한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즉, 적어도 병역거부에 있어선 양심이란 게 무한방패로 바뀌는 것이다. - 미국은 실제로 이런 군인들이 있다고 한다. 휴전국을 이유로 병역의무가 있었을텐데 말이 좋아 양심적 병역거부이지 그 누구라도 신설된 이 거부권을 누리지 않을 자 없으리라.
비상상황이라 해도 "난 양심에 따라 참전할 수 없다"고 하면 그 누가 참전을 강요하겠는가. 오직 직업군인들만을 참전시킬 수 있을 것이고 설령 직업군인이라 쳐도 그 사이에 개종 등을 통해 본인이 생각하는 양심에 따라 참전할 수 없다 하면 강제할 법적 권한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즉, 적어도 병역거부에 있어선 양심이란 게 무한방패로 바뀌는 것이다. - 미국은 실제로 이런 군인들이 있다고 한다. 휴전국을 이유로 병역의무가 있었을텐데 말이 좋아 양심적 병역거부이지 그 누구라도 신설된 이 거부권을 누리지 않을 자 없으리라.
또한, 그간 양심에 그르쳐서(?) 군대에 간 세월을 보상(배상)해 달라는 손해배상청구도 불을 뿜을 듯 하다.
내 양심에 따른다면 군대에 가기 싫었으나, 국가가 양심에 반해 군대가길 강요했으니 이를 배상해 달라는 소송이 종교에 상관없이 봇물을 이룰 듯.
생각해 보면, 이십여년 전 군가산점 위헌판결은 이미 이런 현실이 도래하기 전 일종의 촉매 역할을 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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