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영화를 보니 왜 이 영화를 전교조 교사들이 그렇게 좋아했는지 알 것 같다. 본인들도 키팅처럼 되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지지를 한껏 받는 교사. 멋있게 말하지만 무책임한 교사 말이다. 닐의 죽음에 키팅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열일곱 즈음의 학생들이 얼마나 연약한지 생닥해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제대로 된 교사였다면 닐의 부모님과 한번이라도 면담을 하고 아이 소양은 이런 것 같으니 참고하세요. 이 아이는 연극을 하더라도 의대에 들어가는 건 문제없을 겁니다... 이런 식의 다독이는 말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교사들은 이기적이야.
그렇게 많은 영화에서 자상한 교육자로 나왔건만 실제론 한없이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 로빈 윌리엄스의 뒷모습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
2017년 10월 16일 월요일
죽은 시인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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