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7일 토요일

기생충

봉준호가 매번 만들던 그렇고 그런 좌파예찬영화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칸 최고상을 받기에 전혀 부족함없는 훌륭한 영화였다.
같은 칸 입성작이지만 수상에 실패한 버닝과 비교해 보면 그 장점이 더욱 빛난다. 버닝은 뭔가 스타일만 남아있는 빈 껍질같은 영화였다.
옥자처럼 위악적이지도 않고 괴물처럼 의식이 현실을 앞서지도 않는다. 설국열차에서처럼 마지막이 개그스럽지도 않아, 극중 박사장이 줄창 주장하는 "선을 넘지 않을 정도'에서 교묘하게 현실을 비튼다.
이 영화에는 각종 상징과 명대사들이 수두룩하다.
한번 빨대꽂은 박사장 집에 내친 김에 기사로 취업하길 바라며 기사식당에서 '되게 상징적이다'는 말을 내뱉으며 회식하는 장면은 당연히 상징 그 자체였고.
주인집이 여행간 사이 네 명 식구들 모두 널브러져 먹고 마시고 욕하며 웃는 장면은 루이스 부뉴엘감독의 ' 비리디아나'에서 온갖 노숙자가 식탁을 점령한 채 난장판을 만드는 장면을 보는 듯 했다.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서 등장인물들만 좀 맛이 갔다는 설정으로 바꾸면 딱 맞는다.
문광이란 이름의 가정부도 그 외모처럼 이름도 참 특이하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문세광'이었는데, 성이 문씨인 건지 성은 따로있고 이름이 문광인진 모르겠다만(후자같긴 하다), 드문 이름이기도 하고 여자 이름으로는 더더욱 잘 안 쓰는 이름이라 이 이름에 담겨있는게 뭘까 궁금해졌다.
주인집 막내 다송이가 좋아하는 인디언 분장을 한 채 동익을 사정없이 찌르는 기택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학살당한 인디언이 지배계급을 찌르는 건가? 싶다가도 동익 역시 인디언 분장을 했었다는 점에 이르르면, 이 영화에서 설정된 약자가 같은 약자에게 혐오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가 싶기도 했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