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일 화요일

가버나움

 영화는 레바논 이야기

현실 기사는 아프간 이야기

가난 떄문에 딸들을 열 살도 되기 전 늙은이들에게 시집보낸다는 아프간 부모들의 기사를 읽고 나니 문득 이 영화 '가버나움'이 생각났다.
가난 떄문에 많은 사람들이 존엄을 잃게 되지만
가난이 모든 걸 합리화하는 건 아니다.

열 살도 안 된 딸을 50넘은 남자에게 팔아넘기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생각.
근데 아홉 살 딸을 팔았단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압권이다.
더 싱한 가난에 닥치면 두 살짜리 딸도 시집보낼 수 있다?
아니, 왜 저렇게 얘들을 계속 낳았지?
단순히 종교 떄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유가 빈약하다.
무지와 가난, 여성혐오가 짬뽕된 경우라고 봐야 할 거 같다.
아무튼 영화에서는, 책임감없는 부모가 '가난' 떄문에 주인공 자인의 여동생 사하르를 바로 저 아프간 부모들처럼 돈을 받고 팔게 되고  사하르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린 나이에 임신 후유증으로 죽게 된다.
그리고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자인은 분노해서 사하르의 남편을 칼로 찔러 교도소로 보내지는데...
자인의 엄마가 교도소로 면회와서 마치 기쁜 소식인 양 또 다른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알린다.
이 떄 설레이는 듯 - 본인 생각에는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 너의 동생이 태어난다라는 소식을 전하는 모친의 들뜬 표정과 이를 황당하게 바라보는 자인의 표정연기가 아주 압권인데 '아니 뭐 이런 인간들이 다 있지?' 이런 표정이다.
아무튼 자인은 '감정이란 게 있느냐'라는 말로 자신의 감정을 전하고 자신을 이렇게 방치한 부모를 법원에 고소하게 되는데...

영화는 계속 교도소에 남아있는 자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나지만 아마도 이후 진정으로 정서적 학대만 일삼는 부모와 헤어질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보여주며 끝난다.

사실, 이런 경우는 진작 인연을 끝냈어야 맞지만.. 그래도 영화 속 자인은 어쩌면 남자아이라서 중동 내에서 저런 행동이라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했다.

아무튼,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고 저런 식의 자식학대가 다 용인되어선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식 죽이고 본인도 죽는 걸 왜 동반자살이라 표현하는가.  자녀 살해 후 본인은 자살이라고 표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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