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겨울의 환

중학교 이학년 초 바야흐로 천구백팔십구년. 그 때까지만 해도 소설책을 사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시기.


설날 세뱃돈 받은 돈으로 이상문학상 수상집인 "겨울의 환"이란 소설책을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잎"과 함께 집근처 장미서점에서 샀었다.


잎속의 검은잎 이야 지금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시집이 되어버렸고...

겨울의 환 은... 수상작 외 여러 단편들이 많았었는데,

대 상 수상작가의 얼굴이 엄마뻘되는 나이답지 않게 너무 고와서 놀랐고 전통서사방법을 따르고 있는 소설이라 - 요즘 많은 현대소설의 흐름인 의식의 흐름을 따라 뜬금없는 얘길 늘어놓는 방식이 아니라 - 어리고 지금처럼 여전히 무식했던 나도 크게 무리없이 읽을 수 있었다.


겨울의 환 이란 제목에서 풍기듯 겨울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어떤 나이든 여인이 근처 야산에 불을 지르고 나서 그것을 TV로 태연히 지켜보면서 자신이 사랑해 왔고 지금 사귀기 시작한지 그닥 오래 되지 않은 불륜관계 연인에게 보내는 일종의 연서 형식이다.


그 녀의 실패한 결혼 얘기, 가족들과 어릴 적 겪었던 육이오 이야기, 동치미 뜨러 가던 어린 시절, 혼수는 제대로 못해줘도 버선과 속옷은 꼭꼭 챙겨 시집보낸 빤한 형편의 친정어머니 이야기, 그리고 그 사이사이 겨울의 추운 이미지들이 녹아 있다.


나이가 들면 추억에 잠기는 시절이 많아지는가.. 좋든 싫든 하나의 사실로만 그것을 대하기에 예전보다 떠올리기 괴롭진 않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늙은 여자의 좋은 점이지.


전쟁을 겪지도 시집을 가보지도 않았고 버선을 챙겨주는 그 누구도 없지만... 그녀가 느꼈던 겨울의 이미지가 내가 느끼는 춥고 을씨년스러운 겨울의 이미지는 닮아 있다.


오늘이 마치 그 소설 속 분위기처럼 스산하고 차가운 기억이 거리를 휘젖고 그와 관련된 기억들이 피어나는 날이었다.


댓글 2개:

Oldman :

저도 구해서 보고 싶어지네요. ^^ 몸은 회복이 되셨는지...

iuprates :

네. 지금은 아주 건강하구요.
헌책방에 보면 찾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
님도 추운 겨울 따뜻하게 보내시길 바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