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17일 화요일

그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다니던 학교 학생회에선 학생들에게 영화 비디오테잎을 빌려줬었다.  
에이젠슈타인이나 타르코프스키, 브래송같은 유명하지만 잘 안 팔리는 영화 감독의 작품을 빌릴 수 있기에 일년에 오직 영화를 빌릴 때만 학생회사무실에 가곤 했다.
그 때 학생회에 가 보면 항상 죽치고 있는 옛 선배들을 볼 수 있었다.  후배들을 지도한다란 명목하게 항상 자리를 지키던 30이넘고 40이 다 되어가던 - 지금은 거의 환갑이 다 되었겠다 - 운동권 선배들은 일부러 휴학을 몇 번씩 반복하거나 때론 제적도 감수한 채 4학년을 거의 10년씩 다니던 언니들도 많앗다.  지금 생각하면 이들은 아마 PD계열과 NL계열이 매 학생회 선거마다 자신들의 계열을 학생회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뿌리내리게 한 조직망의 일원이 아니었을까 싶다.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아직까진 장유유서 전통이 살아있는지라 감히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훈장질하는 철지난 선배들의 자리도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오늘 드루킹이 기소되었다는 얘길 듣고 보니, 갑자기 그 때 그 선배들의 풀죽은 풍경이 떠올랐고 그녀들은 어디서 무얼 할까 라는 생각이스쳤다.
물론, 내가 드루킹이란 사람을 개인적으로 아는 건 아니기에 그가 전에 운동권이었는지 아닌지, 학교를 몇 년이나 다녔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배운 건 있으나 공식적으로 어떤 직함을 가지지 못한, 또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어둠의 공간에서 여론조작업무에 종사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꽤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닌 아주 제한적이고 약간의 불법성을 감수할 만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있지 않을까.  
왜 그는  전업댓글러로 나섰을까?  대선이라는 큰 시장이 끝난 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제한적이지 않았을까. 물론 여기저기 인사추천을 하고 그게 반영된 경우도 있었으리란 추측은 가능하지만 그렇게 반영된다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위치가 예전같지 않고 팽당하기 직전이란 것을 예감했었는지 모른다.

생각할수록 묘한 인생의 법칙.
한번 아싸는 평생 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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