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8일 토요일

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영화 헝거가 신념을 위해 굶주림을 감수하는 이상론자의 이야기였다면, 록산 게이가 쓴 책 '헝거'는 자신의 뚱뚱하고 항상 허기에 가득한 몸을, 미를 찬미하는 사회현상에 대항하는 양식으로 바라보며 쓴 책이다.

그녀는 12살 때 '크리스토퍼'라는 또래 아이에게 강간을 당한 후 자신에게 가하는 형벌 또는 남자들에게 혐오스럽게 보이고자 하는 마음, 불쾌한 마음과 뭔가 채우고 싶어하는 마음... 그러한 심리가 모이고 모여 엄청난 비만이 되어버렸다. 
  한창 많이 나갈 땐 216kg였고 책을 쓸 당시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100kg대 후반쯤 나간다고 고백한다.  지금은 더 빠졌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이 회복되었을 테니까.
  일종의 자기고백록인 책으로, 읽다 보면 뭔가 회고록이나 참회록같은 느낌도  든다.  비교적 단순한 주제로 이렇게 한 권 뺴곡이 채웠다는 게 놀랍고 비슷비슷한 표현과 내용이 많이 등장하기에 글이 좀 단조롭고 전투적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도 신선한 시도이고 색다른 표현도 많이 등장한다.


다음은 기억해 볼 만한 내용.

p. 33.
미리 알려주고 싶은 사실이 있는데 내 인생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별로 깔끔하지 않지만 반으로 나누어져 있다.  '비포'가 있고 '애프터'가 있다.  몸무게가 늘기 전, 몸무게가 늘어난 후, 강간을 당하기 이전, 강간을 당한 이후.

p..38
내 몸은 우리cage다.  내 스스로가 만든 감옥이다.  지금도 여기에서 어떻게든 탈출할 방법을 찾고있다.  20년이 넘도록 이 안에서 나갈 방법을 알아내려고 나도 노력을 하고 있다.

p. 73.
내가 왜 음식에 의지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아니 안다.  나는 외로웠고 겁먹었고 음식은 즉각적인 만족을 주었다.   내가 위로받고 싶지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요구해야 할지 모를 때 음식은 내게 위로를 주었다.  음식은 맛있었고 기분을 더 낫게 해주었다.  음식은  내 손이 닿는 곳에 있었던 단 한가지 위로였다.

p.143
살을 빼라는 우리 가족의 지속적인 압박은 나를 오히려 더 고집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 해서 피해를 받을 사람은 오직 나뿐이지만.  가족들이 부담을 줄수록, 나를 사랑한다 말하지만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는 이 사람들을 벌주기 위해서라도 다이어트를 거부하겠다는 아집이 생기기도 한다....

p. 145
당신이 비만이면 당신의 몸은 여러 측면에서 공식기록이 된다.  당신의 몸은 지속적으로 뚜렷하게 대중에게 전시된다.  사람들은 당신의 몸에 대해 자신들이 추측한 이야기를 입힐 뿐이고 당신의 몸에 담긴 진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 진실이 무엇인가에는 상관없이.
뚱뚱하다는 건 피부색과 흡사하게 절대로 숨길 수 없는 특징으로 아무리 짙은 색 옷만 입고 아무리 처ㅣ선을 다해 가로줄 무늬 옷을 피해도 별수 없다.  .

p. 184
기간을 정해놓고 그 기간 안에 내 몸이 쉽게 달성할 수 없는 이상적이다 못해 허황된 목표를 세운다.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까지는, 호주에 가기 전까지는, 애인을 만나는 날 전까지는 x킬로그램을 감량할 거야.  북투어 전까지 x킬로그램은 뺄 거야...
나의 한껏 부풀었던 환상과 그 뒤라ㅡㄹ 이은 실망은 나 혼자만 간직하기로 한다.


p. 215.
나는 열망으로 가득하고 질투로 가득하고 내 질투의 너무 많은 부분이 끔찍하다.  나는 섭식장애의 무서운 현실을 폭로한 나이트라인 특집방송을 본다... 내 분노는 보통 침묵으로 사라지는데 어느 누구도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하면서도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없는 뚱뚱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기 떄문이다.  ...

p.224
  (폭식증과 구토에 대한 이야기 후..)  그만두고 싶었지만 원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나에게는 굳어진 습관이라는 것이 있으며 하루 종일 굶다가 엄청난 양의 저녁 식사를 하고 그것을 다 토해버린다... "머리카락이 왜 빠지나"인터넷에 이렇게 물었다.  마치 그 이유를 모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p. 228.
나같은 몸에 맞는 장소는 그리 많지 않다.
팔걸이가 있는 의자는 대체로 견딜 수가 없다.  이 세상에는 팔걸이있는 의자가 무척이나 많다.  그런 의자에 앉았다가 생긴 멍은 잘 없어지지 않는다...

p. 234.
이제부터는 내 몸이 얼마나 이상하게 다뤄지는지를 이야기해야 되겠다.  나는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밀쳐진다.  마치 나의 '둥뚱함으로 인해 나는 고통에 면역이 되었거나 아니면 내가 마땅히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뚱뚱한 것에 대한 벌인 것만 같다.

p. 235.
비행기 여행은 내게 또 다른 지옥을 선사한다...그래도 나는 직업적으로 운이 좋은 편이라 나에게 강연을 요청하는 기관들이 일등석 제공을 계약의 일부로 포함하도록 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갓다.  이것은 나의 몸이고 그들도 알고 있으며 그들이 자신들을위해 나를 여행하게 하고 싶다면 적어도 내 존엄의 일부는 존중해주어야 할 것이다.


p. 266.
모든 사람과 자신에게 말해놓은 절반의 진실을 스스로 납득하고 믿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해 퀴어 정체성을 연기했다.  나는 퀴어로서 존재했다.  젊은 퀴어 시절의 나는 지나치게 많은 게이 프라이드 반지를 꼈고 브로치를 달고 다녔다.  차에는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놓기도 했다.  왜 그러한지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여러 가지의 이슈에 공격적일 정도의 열정으로 대했다.

9.270
  ..내 몸은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내 몸에 어떤 일이든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었다.  내가 성적으로 무엇을 즐기는지도 몰랐는데 누가 나에게 물어본 적도 없고 내가 원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무조건 황송해해야 했다.  만족 같은 건 찾을 권리가 없었다.

p. 273.
... 학생들에게 소설은 어떤 면에서 욕망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은 대체로 우리 욕망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기 마련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원하고 원하니까.  아, 우리는 얼마나 원하는가, 우리는 허기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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