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지난 봄 미투사건으로 떠들썩했던 모 검사의 인터뷰를 보니 뜬금없이 영화 더 헌트가 생각났다. 증거없이 증언으로만 가해자를 특정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8년 전 상가집에서 성추행을 당했단 거고 그 이후 5년새 네번인가 원치 않은 곳으로 발령나는 인사 불이익을 겪었다는 게 주장의 요지인데 당시 cctv가 남아있지도 않고 참석자 중 추행현장을 봤다는 사람도 없다.
물론 검찰이 워낙 서슬퍼런 조직이기 때문에 봤다는 증언을 감히 할 수 없을거란 주장도 있지만 글쎄. 검찰이야말로 정권에 따라 춤추는 조직이고 더구나 안씨는 축출당한 신세인데 과거에 추행을 목격했다면 무어 그리 겁날 게 있겠는가.
결국 일반인들이 이 폭로에 관심을 기울여주고
응원해주는 건 검사의 폭로는 거짓이 없을 거란 가정에 기초한다. 그리고 안씨가 사람들이 싫어하는 전정권라인검사였단 이유도 한몫한다.
다시 이 일이 부각되는 걸 보니 왜 사람들은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응원을 보낼까 싶고 그 응원의 방향을 결정짓는 건 결국 인간의 외형적 조건 아닐까 싶었다.
어린아이의 헛된 폭로 때문에 주인공은 고초를 겪지만 혐의를 벗은 이후에도 마을사람들의 경계는 풀 길이 없다. 검사의 증언은 어린아이보단 그 신뢰도가 훨씬 높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 증언 뿐이라면?
생각해 보면 증언은 있되 증거는 없는 사건일수록 사람들은 피해자감정에 더 몰입한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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